[자존과 원칙의 힘] 한미 FTA 성공 이끈 대통령의 한마디
매체명 : 매일경제   게재일 : 2021.01.08   조회수 : 360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2007년 3월 29일. 한국 측 협상팀 캠프가 차려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중동 순방 중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 "대통령님, 협상에 전혀 진척이 없습니다. 협상이 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잘해보세요. 끊습니다." 협상이 결렬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노 전 대통령은 별다른 지침을 내리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대한민국 외교관의 실력을 믿고 이들에게 협상을 일임한 것이었다.

한국 측 김종훈 수석대표와 김 본부장, 조태열 통상교섭조정관 등 협상팀은 미국 측에 `협상을 깰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압박을 가했다. 이제까지 한미 협상에서 끌려다니기만 했던 한국이 처음 보인 여유 있는 태도에 미국 협상팀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협상 시한은 오히려 미국에 부담으로 작용했고 결국 미국은 한국의 가장 강력한 요구사항이었던 `자동차 관세 즉시 철폐`를 수용하며 한미 FTA는 극적으로 타결됐다. 

 

40년 외교관 생활 대부분을 통상외교 최일선에서 뛰었던 조태열 전 주유엔대사가 저서 `자존과 원칙의 힘`에서 전한 한미 FTA 협상 뒷얘기다. 이 책은 국익을 지키려고 치열하게 협상에 임하는 대한민국 외교관의 고군분투에 관한 이야기다.

그동안 미국과 통상 협상에서 늘 수세에 몰렸던 한국 협상팀이 당시 한미 FTA에서 이례적인 성과를 올렸던 것은 자국 외교관의 실력과 판단을 신뢰한 대통령의 힘 실어주기가 원동력이 됐다는 게 조 전 대사의 생각이다.

현 정부 들어 외교가에선 대한민국 외교관의 자부심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외교 현장 최일선에서 국익을 위해 뛰어온 엘리트 외교관들이 `적폐`로 몰리면서 사기가 저하됐다는 것이다.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선 엘리트 외교관들이 그동안 지나친 친미외교를 펼쳤다는 시각이 상당하다. 현 정부서 단행된 외교부 고위직 및 해외 공관장 인사에선 정통 외교관 출신이 아닌 외부 인사 수혈이 많았던 점도 이런 시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엘리트 외교관의 시각에서 쓰인 40년 한국 외교의 기록인 이 책은 지난 4년간 수세에 몰렸던 전문 외교관들의 우회적인 항변으로도 읽힌다. 우방조차 신뢰할 수 없는 통상 전쟁의 시대가 도래한 상황에서 애국심, 경험, 실력을 겸비한 외교관을 믿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조 전 대사는 대한민국 통상 외교가 본격화했던 1980년대부터 외교부 지역통상국장, 주제네바대표부 차석대사, 통상교섭조정관을 맡으며 통상 전문가로 활약했다.

2019년엔 유엔개발계획·유엔인구기금·유엔프로젝트조달기구 집행이사회 의장에 선임돼 다자 외교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아들답게 글이 매끄럽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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