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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비겁함이 넘치는 오늘, 큰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芝薰 趙東卓(1920~1968) 선생께서 타계하신 지도 어언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럼에도 선생의 초상은 생전의 그 모습 그대로 우리들의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선생을 일컬어 참된 선비, 知行을 겸비한 지성인, 한 시대를 밝힌 큰 스승이라 칭송합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시대가 뒤숭숭할 때마다 선생을 기리곤 합니다. 선생은 생전사후를 떠나 우리들의 사표입니다.《志操論》을 비롯하여 亂世를 걱정하며 쓰신 수십 편에 달하는 警世의 문장을 통하여 우리는 그 분의 매서운 선비 정신과 역사와 사회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형안을 접할 수 있습니다. 큰 그릇다운 금도와 도량을 유지하면서애정에 바탕을 두고 비리와 불의를 질타하던 선생의 명 논설의 울림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선생은 약관으로 시단에 등단하여 〈승무〉, 〈고풍의상〉, 〈봉황수〉 등 빼어난 작품을 남기셨습니다. ‘청록파’의 한 분으로서 한국 서정시의 주류를 완성함으로써 20세기 전반기와 후반기를 이어 준 큰 시인이었습니다.그분의 시에는 동양의 고아한 정신과 멋이 관류하고 있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은 선생의 이러한 시세계에 매료되곤 합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지으신 〈病에게〉에서 우리는 생사를 초월한 그 분의 높은 정신세계를읽으며 새삼 옷깃을 여미곤 합니다. 시집 《歷史 앞에서》를 접할 때면 杜甫의 詩史를 떠올리곤 합니다. 선생은 한국 현대시의 큰 봉우리였고 시사의 한 획을 긋고 가신 분이었습니다.

국학자로서의 선생의 진면목은 또 어떠하였습니까. 시인이되 우리 국학에 그만큼 밝고 많이 아는 분을 저는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30세 전에 일차 탈고한 《한국문화사서설》은 지금도 동학들에게 회자되는 명저입니다.광복 직후의 학계 수준이 어떠하였는지를 감안하고 이 책을 대하면 그 진가에 다시 한 번 경탄하리라 믿습니다.《한국민족운동사》는 사학자들도 높이 평가하는 노작입니다. 희귀한 자료를 원용하여 선생 나름대로의 史觀에 입각해서 갑신정변 이후 경술국치를 거쳐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우리가 겪은 고통과 간난 그리고 독립을 위해 싸운한민족의 항일투쟁사를 이 책은 명료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신라 국호연구”, “신라가요의 연구” 등의 논문은 신라사에 대한 그 분의 총체적인 연구의 일환으로서 어학·역사학·문학 등의 각도에서 신라의 성립 및 국호의 의미와 신라 향가에 대한 탁견을 피력한 것입니다.신라를 감각으로서가 아니라 학술 면에서 천착한 이 연구물은 사계에 큰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민속학에 대한 선생의 관심도 대단하였습니다. 주목할 만한 여러 편의 논문을 쓰셨고 말년에는 온전히 이 방면에 전심하여 현저한실적을 남기고자 계획을 짜시던 차에 세상을 하직하고야 마셨던 것입니다.국학에 대한 선생의 지대한 관심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장의 직임을 맡고 계시면서 광복 이후 우리 학계의 최대 성과의 하나로 꼽히는 《한국문화사대계》 전 7권을 처음서부터 기획하고 발간하는 작업에서 그 절정을이루었습니다.

그때 제가 선생의 부르심을 받고 민족문화연구소 총간사의 직책을 맡으면서 이 거창한 민족적인 학술사업에 참여하여 진력한 일과 중도에 애석하게도 그 분께서 서거하신 후 연구소장직을 이어받아 그 완간을 마무리한 일을저는 생애의 가장 큰 보람으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께서 짜놓고 가신 민속학 계획서에 따라 역사적인 출판물이라는 세평을 받고 있는 《한국민속대관》 전 6권을 공간한 일도 선생의 평생 꿈을 이루어 드렸다는점에서 늘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호탕한 성품에 멋과 풍류로 일세를 드날렸던 선생에 대한 추억을 우리 모두는 잊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국가에서 선생을 ‘이 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함에 따라 선생의 개결한 생애와 문학 및 학문에 대한 공적을 상찬하고 기리는기회를 갖게 된 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오늘 우리는 한 마음으로 선생의 고매한 인품과 학덕을 새삼 떠올리며 기념의 행사를 가지려 합니다.

이 행사에 깊이 있는 글을 보내주신 학계의 인사들, 시 낭송에 선뜻 응해주신 시인 여러분들, 무용과 가곡으로 이 날을 더욱 빛내게 하여 주신 예술가 두 분, 또한 그 옛날 따사로운 부부애를 회상하면서 서화를 출품해 주신노년의 사모님께 충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이 행사를 기획 추진한 지훈상 운영위원 여러분과 젊은 문인 및 學究들의 노력에 고마운 뜻을 표합니다.

2002년 6월 15일
芝薰賞 운영위원회
위원장 洪一植 삼가

   


조지훈선생 연보

    1920
    1920.12.3
    1928~1928
    1929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동에서 부 조헌영(제헌 및 2대 국회의원, 6․25 때 납북됨) 모 유노미의 3남 1녀 가운데 차남으로 출생.
    1925.~1928. 조부 조인석으로부터 한문 수학, 영양보통학교에 다님.
    1929.처음 동요를 지음. 메테를링크의 〈파랑새〉, 배리의 〈피터팬〉,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등을 읽음.
    1930
    1931
    1934
    1935

    1936
     

    1938
    1939
    형 세림과 ‘꽃탑’회 조직. 마을 소년 중심의 문집 〈꽃탑〉꾸며냄.
    와세다대학 통신강의록 공부함.
    시 습작에 손을 댐.

    첫 상경, 오일도의 시원사에서 머무름. 인사동에서 고서점 ‘일월서방’을 열다. 조선어학회에 관계함. 보들레르․와일드․도스토예프스키․플로베르 읽음. 〈살로메〉를 번역함.

    초기작품 〈춘일〉, 〈부시〉 등을 씀. “된소리에 대한 일 고찰” 발표함.
    한용운․홍노작 선생 찾아봄.
    《문장》 3호에 〈고풍의상〉 추천받음. 동인지 《백지》 발간함(그1집에 〈계산표〉, 〈귀곡지〉 발표함). 〈승무〉 추천받음(12월).
    1940
    1940
    1941
    1942
    1943
    1945
    1946
    1947
    1948
    1949
    〈봉황수〉 추천받음(2월). 김위남과 결혼함.
    혜화전문학교 졸업(3월). 오대산 월정사 불교강원 외전강사 취임(4월). 상경(12월).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원(3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심문받음(10월). 경주를 다녀옴. 목월과 처음 교유.
    낙향함(9월).
    조선문화건설협의회회원(8월). 한글학회 〈국어교본〉 편찬원(10월). 명륜전문학교 강사(10월). 진단학회 〈국사교본〉 편찬원(11월).
    경기여고 교사(2월). 전국문필가협회 중앙위원(3월). 청년문학가협회 고전문학부장(4월). 박두진ㆍ박목월과의 3인 공저 《청록집》 간행. 서울여자의전 교수(9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창립위원(2월). 동국대 강사(4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수(10월).
    한국문학가협회 창립위원(10월).
    1950
    1950
    1951
    1952
    1953
    1956
    1958
    1959
    문총구국대 기획위원장(7월). 종군하여 평양에 다녀옴(10월).
    종군문인단 부단장(5월).
    제2시집 《풀잎단장》 간행.
    시론집 《시의 원리》 간행.
    제3시집 《조지훈 시선》 간행. 자유문학상 수상.
    한용운 전집 간행위원회를 만해의 지기 및 후학들과 함께 구성함. 수상집 《창에 기대어》 간행.
    민권수호국민총연맹 중앙위원. 공명선거 전국위원회 중앙위원. 시론집 《시의원리》 개정판 간행. 제4시집 《역사 앞에서》 간행. 수상집 《시와 인생》 간행. 번역서 《채근담》 간행.
    1960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7
    1968
    한국교수협회 중앙위원.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이사. 3․1독립선언 기념비건립위원회 이사. 고려대아세아문제연구소 평의원.
    세계문화 자유회의 한국본부 창립위원. 벨기에의 크노케에서 열린 국제시인회의에 한국대표로 참가. 한국 휴머니스트회 평의원.
    고려대 한국고전국역위원장. 《지조론》 간행.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 《한국문화사대계》 전6권 기획. 《한국민족운동사》 집필.
    동국대 동국역경원 위원. 수상집 《돌의 미학》 간행. 《한국문화사대계》 제1권 〈민족․국가사〉 간행.제5시집 《여운》 간행. 《한국문화사서설》 간행.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편찬위원.
    민족문화추진위원회 편집위원.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신시60년 기념사업회 회장.
    5월 17일 새벽 5시 40분 기관지 확장으로 영면. 경기도 양주군 마석리 송라산에 묻힘.
    1970
    1972
    1973
    1978
    서울 남산에 ‘조지훈 시비’가 세워짐.
    《조지훈 전집》(전7권)을 일지사에서 펴냄.
    《조지훈 연구》(김종길 등)가 고려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옴.
    1980
    1982 향리 주실에 ‘지훈 조동탁 시비’를 세움.
    1990
    1996 《조지훈 전집》(전9권)을 나남출판사에서 펴냄.
    2000
    2000
    2001
    2002
    2006
    2007
    2007
    〈지훈상〉(지훈문학상, 지훈국학상) 제정.
    제1회 〈지훈상〉 시상. 《지훈 육필시집》을 나남출판사에서 펴냄.
    문화부 〈이달의 문화인물〉에 선정되어 5월에 경북 영양과 서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각기 행사를 가짐.
    고려대학교 교정에 ‘지훈시비’를 세움.
    고려대 교우회 창립100주년기념 ‘자랑스런 고대인상’ 수상.
    향리에 ‘지훈 문학기념관’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