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템과 터부] ‘친부 살해’ 신화적 모티프, 현대적으로 풀어낸 심리주의 소설
매체명 : 세계일보   게재일 : 2022.10.22   조회수 : 81

 인간 정신의 원형과 뿌리에 관심을 두고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융, 조셉 캠벨 등 세계적인 심리학자들의 무의식적 세계관과 신화적 상징을 탐구해온 한은호 작가의 장편소설 <토템과 터부>가 21일 출간됐다. ‘친부(親父) 살해’라는 신화적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풀어내 비극적 운명에 휩싸인 등장인물들의 역정을 다룬 책이다.


미국 휴스턴 라이스대 심리학과 교수로 부임한 주인공 준열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주제로 첫 강의를 마친다. 총영사관의 부탁을 받고 ‘남극기지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던 중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우연히 만나면서 혼란에 빠진다. 또다른 주인공 최수혁은 플라즈마 연구의 난제를 해결한 천재 수학자다. 수혁은 자신이 쌍둥이로 태어났고, 자신과 쌍둥이 형의 아버지가 다르다는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에 직면한다.


한 작가는 극지과학, 플라즈마 난류, 우주 탐사 등 2020년대 최첨단 과학기술 개발의 현장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고, 지적이고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친부 살해 모티프를 현대적 이야기로 재해석했다.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주인공들이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차츰 삶의 진실에 다가서는 모습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준열이 반복적인 꿈과 극한 상황 속 인간의 이상행동을 계속 추적하며 연구하는 과정은 이야기의 또다른 중심축이다. 휴스턴 우주센터의 의뢰로 그가 연구하던 우주비행사들은 ‘환상 속에서 이상한 모양의 기호를 봤다’고 입을 모았다. 남극기지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현장에서도 비슷한 모양의 기호, ‘우로보로스’가 발견된다.


우로보로스는 고대 선조들로부터 현재까지 전달된 이미지이자, 무의식 속의 오래된 기억이다. 뱀이 몸을 둥글게 말고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모양의 우로보로스는 죽음과 동시에 재탄생을 상징한다. 한 작가는 준열이 자신도 모르는 새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마치 무의식 속 오래된 기억을 발굴하는 험난한 여정처럼 묘사했다. 인간 정신의 심연에 머물러 있던 오래된 기억이 마침내 자신의 아버지와 마주한 준열의 피를 들끓게 한다.


삐뚤어진 욕망으로 끔찍한 죄를 저지른 아버지는 과연 속죄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죄를 업보처럼 대신 지고 살아야 하는 준열은 운명의 굴레를 벗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조금씩 드러나는 진실의 조각들을 통해 인간이 운명 앞에 좌절하고, 결국 자기 파멸이라는 비극적 굴레에 갇히는 서사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토템과 터부>/한은호/나남출판/1만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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