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일본이 '유의'해야 할 것은 문 대통령 발언이 아니다
매체명 : 오마이뉴스   게재일 : 2021.01.21   조회수 : 292

[김종성의 히,스토리] 1944년 1월 20일 학병 강제 징병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지난 8일자 위안부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일 간에 풀어야 할 현안들이 있다"라며 "우선, 수출규제 문제가 있고 강제징용 판결 문제가 있다"라고 한 뒤 "위안부 판결 문제가 더해져서 솔직히 조금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

 

임시정부 광복군은 1940년 9월 조직됐다. 1942년 12월에는 김원봉의 부대가 합류했다. 하지만 광복군은 항상 병력이 부족했다. 이국땅에서 한국 군대를 조직하는 일은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었다. 백범 김구도 그것을 늘 고민했다.

 

그런 김구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일이 1945년 1월 30일 있었다. 가슴에서 일장기를 떼는 장면만 봐도 감동이 넘칠 그 시기에, 가슴에 태극기를 붙인 청년들이 충칭(중경) 임시정부 청사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백범일지>의 여러 판본 중에서 나남 출판사판(版) <백범일지>에 따르면 그 상황은 아래와 같다.

 

어느 날 홀연 우리 임시정부 정청으로 가슴에 태극기를 붙이고 일제히 애국가를 부르며 들어서는 이들이 있었다. 이는 화북(북중국) 각지 왜군 중에(서) 한인 학병 청년들이 모험 탈주하여 (안휘성) 부양으로 오는 자들을 제3지대장 김학규의 지령으로 정부에 호송한 것이다.

 
이 숫자는 50명을 넘었다. 이국땅에서 가슴에 태극기를 붙인 청년 50여 명이 갑자기 집단으로 출현했으니 만 69세의 김구가 얼마나 뭉클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외국인들에게도 감동을 줬다. <백범일지>는 "중국의 각계 인사들이 50여 명 청년의 환영회를 중한문화협회 연회장에서 개최하니, 서양의 각 통신사 기자들과 각국 대사관들도 호기심으로 참석"했다고 말한다. 환영식에서 나온 어느 학병의 발언은 참석자들의 감동을 배가했다.
 
일본에 유학 중 장병으로 전장에 나서게 되어 가족과 작별 인사를 나누러 귀가하였더니, 부모와 조부모님들이 비밀히 교훈하길 우리의 독립정부가 중경에 있으니 왜군의 앞잡이로 끌려 다니다가 개죽음하지 말고 우리 정부를 찾아가서 독립전쟁을 하다가 영광스러운 죽음을 하라는 하명을 받았습니다.
 
<백범일지>는 "이 말에 한인 동포는 말할 나위도 없고 연합국 인사들의 감격이 넘쳤"다고 한 뒤 이것이 광복군에 대한 미군의 관심을 높이고 학병과 미군이 비밀훈련을 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

 

기사 원문보기

이전글 [크림반도 견문록 1·2 ] 순결하며 정직하고 순박한 크림반도
다음글 [기부자의 7가지 얼굴] [망중한] 당신은 어떤 기부자입니까?
prev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