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선생님 영전에 ‘생명의 문학’ 일깨우는 별 되소서
매체명 : 한겨레   게재일 : 2008-05-06   조회수 : 6408
내가 그녀, 박경리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사촌 오빠가 건네 준 무겁고 딱딱한 책 <토지>를 밤새워 읽어버리고 나자, 고모네 집 창호지가 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그때 막연히 나는 어떤 운명을 예감했는데 그것의 정체를 안 것은 최근이었다.
그후 나는 <토지>를 5부까지 5번쯤 읽었다. 나는 그녀의 모든 작품들을 다 찾아 읽었고 그 책들은 지금도 내 책장 한켠에 나란히 꽂혀 있다. 삶이 힘들 때 나는 가족들을 위해 밤새 쓸 수밖에 없다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울었고, 문학이 힘겨워 목이 메일 때 나는 그녀의 책 아무 페이지나 펼쳐들고 읽었다. 가끔, “선생님, 어떻게 하면 진정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 하나 품고 훌쩍 그녀가 사는 원주로 가보고 싶었으나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인터뷰 기사들이 이 문학소녀의 발길을 막곤 했다. 80년대 말 노동운동을 떠나기 전, 선배들에게 “영원히 문학을 포기하겠다”라는 선언을 강요당한 것도 세미나 발제를 포기하고 몰래 <월간 경향>에 실리던 <토지> 4부를 읽던 때의 일이었다.

<토지>가 완간되고 원주 선생네 대문이 열렸을 때도 나는 그녀에게 가지 못했다. 당시 나는 만삭의 몸이었고 그리고 문단과 삶에 지쳐 모든 전화를 끊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었다. 선생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 작가 강석경과 함께였다. 처음 찾아가던 날, 내가 그토록 떨며 그리워하던 그이는 뜻밖에도 분홍 리본으로 머리를 질끈 동이고 계셨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은 소녀처럼 몹시 수줍어하셨지만 우리 두 사람의 진심어린 만류로 그날 그 리본을 끝까지 매고 게셨다. 우리 호랑이 띠 세 여자들은 된장국과 김치만으로 밥을 두 끼나 더 먹으며 그렇게 하루를 보냈고 나는 그렇게 한번 더 그분을 찾아 뵈었다. 그때 그분은 내게 낡은 재봉틀을 보여주시며 말했다. “알아? 이 재봉틀 믿고 원주로 왔어. 이 재봉틀 믿고 <토지>를 시작했지…. 실패하면 이걸로 삯바느질을 한다, 다만 내 문학에 타협은 없다.” 돌아나오는 길은 어두웠다. 그분은 그 집에 밤이면 늑대가 울고 여우가 운다고 말씀하셨다. 무섭지 않으세요? 내가 물으니 그냥 웃으셨는데, 차라리 짐승들이 덜 무서웠던 그분을 내가 조금 이해한다고 하면 과장일까?

박경리. 봉건으로 인해 살아계신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자존심 강한 소녀, 대학 등록금을 받으러 처음 아버지를 찾아갔다가 뺨을 맞고 진학을 포기한 슬픈 소녀는 그 후 성년이 되지만 전쟁으로 인해 남편을 잃고 부실한 의료진의 실수로 아들마저 잃는다. 작가가 된 후 얻은 사위는 이 나라 민주화의 상징이었지만 그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된 후, “그 많았던 손님의 발길은 뚝 끊어지고 딸이 사위의 옥바라지를 하러 간 동안 자신에게 맡겨진 손주를 업고 동네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가는 길에 친한 지인마저 눈을 피해 달아나는 것을 바라보던” 모진 세월을 겪었다. 우리의 잔혹한 현대사는 한 작가를 키워내기 위해 그녀의 가슴에 모진 발자국을 차근차근 새겼고 그 멍자국 속에서 그녀는 문학이라는 푸른 생명의 나무를 키워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이 입원했다는 말을 들은 날부터 내 마음은 아산 병원 근처를 헤매었지만 문학소녀였던 그때처럼 나는 그분 곁에 갈 수 없었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미사를 갔는데 예정에 없던 장례 미사였다. 어제 마라톤을 하던 50대 가장이 돌연사했다고 했다. 강론을 하던 신부님은 보령에서 신부님의 친구 분을 잃으셨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오후, 나는 박경리 선생의 부음을 듣는다.

나는 그분이 이 세상을 떠나신 것이 슬프지 않다. 내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린다고 해도 그렇다. 세상이 그분에게 잘못을 많이 했지만 그분은 그것을 껴안고 삶이 주는 고통이 어떻게 아름다움의 탄생에 관계하는지 몸으로 보여주셨다. 무릇, 내내 우리 가슴 속에서 별이 되는 모든 위대한 사람들의 생이 그러하듯.

소설가 공지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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