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이자 교육가였던 현상윤 선생...모교 초대총장 지낸 대한민국 1호 박사
매체명 : 고려대교우회보   게재일 : 2008-04-11   조회수 : 7552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였던 기당 현상윤 선생이 남긴 책과 글이 전 5권의 <기당 현상윤 전집>으로 나남출판사에서 출간됐다. 3·1운동의 실질적 역할을 감당하였던 독립운동가이며 한국학의 체계적 저술을 남긴 학자이자 지성인으로서의 삶을 실천했던 선비인 기당 현상윤 선생. 이 책에서는 조선유학자와 조선사상사는 물론 논설, 수필, (한)시, 소설 등 1893년부터 1950년까지의 기당 선생의 모든 저술이 수록돼 있다. 또한 조선유학사 원전과 선생의 육필 원고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지난 2005년 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기당 현상윤 전집 간행위원회’가 3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송갑준 경남대 교수, 김왕연 한남대 교수, 이애희 강원대 교수 등 25명의 학자들이 간행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으며, 현재천 모교 교수, 현재민 KAIST 교수,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등 기당의 손자들이 자문과 후원을 맡았다. 1·2권은 기당이 1949년 펴낸 ‘조선유학사’의 원전 영인본과 새로 역주 작업을 거친 ‘조선유학사’를, 3권은 1950년 집필했으나 6·25로 원고를 잃었다가 1986년에야 출간된 ‘조선사상사’를, 4·5권은 각종 매체에서 썼던 글을 각각 ‘사상편’과 ‘문학편’으로 나눠 담았다.
평북 정주의 한학자 가정에서 태어난 기당은 평양 대성학교와 서울 보성중학을 다닌 뒤 1914년 일본 와세다대로 유학을 떠나 1918년 와세다대의 사학과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중앙중학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3·1운동의 준비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보성중학 교장 최린을 찾아가 천도교의 지원 약속을 받고, 일본 유학생 송계백을 만나 2·8 독립선언서의 초고 인쇄 활자를 받았으며, 최남선과 천도교주 손병희를 움직이고 서울시내 학생 동원에도 관여했다. 20개월 동안의 감옥살이 뒤 중앙고보 교장이 됐고, 광복 뒤에는 경성대학 예과부장에 이어 보성전문학교장에 취임했다. 1946년에는 보성전문의 후신인 고려대 총장이 돼 ‘한국사상사’를 정규과목으로 정하고 직접 강의를 맡았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강제 납북됐으며, 3년 뒤 ‘조선유학사’로 대한민국 첫 박사학위를 받았다. 윤사순 간행위원장은 “기당은 근대 신문학의 선도자이자 구국의 투사였다. 목숨이 다 하도록 이 민족을 사랑하고 이 민족의 정서와 학문과 사상을 지극히 아끼고 음미하고 계발하는 데 혼신을 다 바쳤음에도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큰 선각자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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