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3.12.223.12.21>'문화,책'- 정치로부터의 자유…주관 없애는 체념 필요하다 ('체념의 조형')
작성일 : 2013-12-23   조회수 : 2313
정치로부터의 자유…주관 없애는 체념 필요하다

등록 : 2013.12.22 20:38 수정 : 2013.12.22 20:38

김우창 희수 기념 문학선집 발간
“우리 시·소설엔 주관 너무 많아
자기를 버려야 비로소 자기가 돼”
“정치 잊을 수 있는 삶 됐으면”

지난 17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예인홀. 문학평론가인 유종호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진덕규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광식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염재호 고려대 부총장,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인 오생근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 그리고 이남호 고려대 교수, 권혁범 대전대 교수,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 김용희 평택대 교수, 이영광 시인 등이 한데 모였다. 원로 문학평론가 겸 인문학자 김우창의 희수연을 겸한 문학선집 <체념의 조형> 출판 기념 집담회였다.

집담회란 특정 분야 전문가 또는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어떤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가리킨다. 이날 집담회의 주인공이자 주제는 김우창이었고 그를 위한 재료가 <체념의 조형>이었다. 김우창의 제자인 문광훈 충북대 교수가 스승의 글 가운데 34편을 골라 묶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예술의 바탕, 사회 속의 인간 현실 안의 문학, 반성적 비판적 사유, 고요·맑음·양심·내면성-문학의 추동력, 심미감각-경험과 형이상학 사이, 시적인 것의 의미, 비교문학적 비교문화적 차원 같은 장별 제목을 보면 김우창의 사유와 글쓰기가 어디를 향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재미없는 세상에서 가장 큰 흥분제가 정치이고 모두가 정치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정치를 가까이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를 잊을 수 있는 삶이 가능해지기를 바란다. 글도 정치에서 멀리 있는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집담회의 모두 발언에서 김우창은 북의 장성택 처형과 남의 어지러운 정치 현실을 거론하며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역설했다. <궁핍한 시대의 시인>(1977)이라는 그의 첫 평론집 제목 또는 이번 선집의 장별 제목에서도 보다시피 그는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쪽이 아니다. 그럼에도 짐짓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듯한 발언에 궁금증이 일었다. 모두 발언 뒤 질문 시간에 문학과 정치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물었다.

“문학은 개인적 고통과 행복을 다루는 예술이며 그걸 점검하면 정치가 제대로 되어 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 정치로써 인생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을 보자. 수신 하다 보면 나라에도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치국평천하를 생각하면 저절로 수신이 되는 듯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문학은 수신까지는 아니라도 삶의 구체성을 보면서 그것이 어떻게 평천하에까지 이를 수 있는가를 따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체념의 조형’이라는 책 제목은 그가 이번 문학선의 서문 격으로 쓴 원고지 320장짜리 긴 글 ‘전체성의 모험: 글쓰기의 회로’ 앞머리에 경구 삼아 인용한 릴케의 시구 “나무는 스스로에/ 금을 긋지 않으니. 그대의 체념의 조형에서/ 비로소 사실에 있는 나무가 되리니”에서 따왔다. 시를 읽어 보아도 아리송하기만 한 제목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다.

“사람이 사물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 인지 능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객관적 인지에 가깝게 가기 위해서는 주관을 없애는, 체념이 필요하다. 릴케의 시는 주관을 체념하고 나무를 객관적으로 보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미학적 사물 인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우리 시·소설에는 너무나도 주관이 많이 들어 있다. 자기를 버려야 비로소 자기가 된다는 걸 상기했으면 한다.”

노학자는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어디까지나 현재에 즉해 사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생겼다. 인생이란 게 알 수 없는 것이고 허무에 닿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너그럽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로 집담회의 발언을 마무리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16568.html
이전글 <강원일보 2014.01.18>'책'-'위기의 언론' 돌파구는 자기성찰(한국 언론의 품격)
다음글 <세계일보 2013.12.12> [학술 단신] - ‘세계 각국 역사논쟁’ 국제학술회의 외('영혼에 관한 토론문제' 소개 수록)
prev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