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3.07.08> "미셸푸코와 현대성" 낸 오생근 교수
작성일 : 2013-07-11   조회수 : 2814
“디지털 감시사회 심화되는 요즘 푸코의 사유는 여전히 유효하다”

ㆍ‘푸코와 현대성’ 낸 오생근 교수

오생근 서울대 명예교수(사진)는 1980년대 초 프랑스에서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로 박사논문을 준비하다 미셸 푸코를 알게 됐다. 브르통의 소설 <나자>의 주인공이 미친 여자로 취급되어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배경을 분석하면서 우연히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읽은 것이다. 오 교수는 그 순간을 “푸코의 세계로 들어간 출발점”이라고 했다. 유학 시절 <담론의 질서> <말과 사물> <감시와 처벌>을 잇달아 읽으면서 새로운 충격을 경험했다고 한다. 박사논문을 마치고 귀국할 무렵 프로스트의 시 ‘눈 내리는 저녁 숲에 멈춰 서서’의 ‘쉬지 않고 계속 가야 할 먼 길’이라는 구절을 떠올렸다. 그 길이 한국에서 푸코를 소개하고 연구하는 일이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1983년 귀국하고 1990년대 말까지 푸코에 관한 논문을 수편 썼다. 1994년엔 <감시와 처벌>도 번역했다. 10년쯤 연구를 중단하다 2011년 정년 퇴임 뒤 최근까지 새 논문 6편을 썼다. 오 교수의 신간 <미셸 푸코와 현대성>(나남)은 새 논문과 예전 논문 6편을 묶은 것이다. 일종의 결산인 책을 두고 오 교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데 30년쯤 걸렸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프랑스에서 돌아온 뒤 푸코에 대한 관심을 끊은 적이 없다. “푸코를 읽으면서 스스로 변하고, 푸코의 책이 모든 것을 다르게 만들 만큼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에 들뢰즈까지 포함해서 데리다니 라캉이니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 세계에 지속해 살아남은 사람은 푸코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푸코의 어떤 점이 불문학자이자 초현실주의 전공자를 매료시키고 최고의 철학자로 평가하게 만든 걸까. 오 교수는 “푸코는 철학이 인간의 영원한 문제보다 오늘과 현재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였고, 철학자로 불리는 것도 거부하면서 계속 자신과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혁명적 열정의 소유자였다”고 말했다. 푸코는 자신의 책을 “생산자의 소유를 떠나서 누구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들고 다니면서 쓰일 수 있는 연장통”이 되기를 바랐다. “자신의 사상적 체계를 구축하려고 하지 않고, 철학사에서 살아남는 데 관심이 없었다. 또 책을 쓰면서 자신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 작가라는 점에 인간적으로도 매료됐다”고 한다. 그는 “문학하는 사람들, 특히 아방가르드 문인들은 문학사에 남으려고 했다”며 웃었다.

오 교수는 푸코가 ‘우리 시대의 위대한 회의주의자’로 불렸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푸코는 철학사의 범주에서 강의하는 철학교수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학자들이 헤겔주의나 현상학 같은 ‘위대한 철학적 기념물’을 설명하고, 칸트와 플라톤에 관한 책을 쓸 때 광기와 의학, 감옥과 섹슈얼리티의 역사를 썼습니다. ‘미친 사람을 치료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하던 때 그게 왜 당연한 것이냐며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학자였습니다.” 그는 “푸코는 어떤 보편적 진리도 긍정하지 않았고, ‘자명한 진실’도 그대로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푸코의 사유는 지금도 유효하다. 오 교수는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팝옵티콘을 빌려 말했던 규율권력이나 감시사회, <성의 역사: 앎의 의지>에서 제시한 생명관리권력 개념은 요즘 디지털 감시사회에서도 적용된다”며 “요즘 모든 권력이 복지 중심으로 옮겨가 개인을 보살펴준다고 하면서 개인을 장악하고, 개인은 서로 경쟁하면서 더 왜소해지고 있다”고 했다. “학교 입학시험부터 직장 경력 쌓기까지 모두가 요즘 ‘스펙’이라고 하는 개인의 기록을 두고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고, 대학 같은 집단도 교수는 연구 기록, 대학은 학교평가 같은 기록에 생사가 좌우되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개인의 종속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데, 끓는 물속 개구리처럼 온도가 오르는 줄도 모르고 있어요. (국정원 같은) 보이는 권력에다 보이지 않는 권력이 개인을 옥죄어 가는 현상이 아주 심각합니다.”

<미셸 푸코와 현대성>을 탈고한 오 교수는 요즘 <성의 역사> 2·3권에 관한 연구를 이어갈 것이라고 한다. 그는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중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의 열정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푸코의 책을 읽고 새롭게 떠오르는 사유의 경험을 갖기 위해서라도 다시 시작할 겁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art_print.html?artid=201307072209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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