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2.11.09> 하이데거를 만나다, 신상희 유고작으로
작성일 : 2012-11-15   조회수 : 3292
하이데거 사유경험과 언어철학 다룬책

밀도있게 우리말로 옮겨내 ‘언어는 존재의 집’ 명제 이해폭 넓혀

2010년 7월 50살 나이에 하늘의 별이 된 신상희(사진)가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의 저술을 마지막으로 번역한 <사유의 경험으로부터>가 출간되었다. 그와 각별한 관계였던 터라 여간 기쁘지 않으나 더불어 슬픔 또한 나를 적신다. 사실 고인은 타계 10일 전 필자가 근무하는 지리산에 내려와 밤새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그때 하이데거의 <언어로의 도상에서>(7월 출간)와 이번에 나온 <사유의 경험으로부터>의 번역 원고를 각각 출판사에 넘겼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 둘이 이제 모두 출간된 것이다.

<사유의 경험…>은 1983년에 비토리오 클로스터만 출판사에서 펴낸 하이데거의 전집 가운데 제13권을 번역한 것이다. 엮은이의 말에서 보이듯이 하이데거의 아들 헤르만 하이데거가 아버지의 작은 글들과 사유의 경험들을 모아 1910년부터 1976년까지 시대순으로 편집한 책이다. 이 책에는 예전에 출간된 하이데거의 주옥같은 글들, 즉 ‘초연함의 해명’ ‘사유의 경험으로부터’ ‘헤벨-가까운 집안친구’ ‘언어’ ‘들길’이 실려 있고, 하이데거가 직접 글을 읽은 육성을 음반에 담아 공개하기도 했던 ‘예술과 공간’ 등이 담겨 있다. ‘존재’라는 별을 향해 ‘길-사유’를 펼친 하이데거의 사유 흔적을 맘껏 느낄 수 있는 저술이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책에 수록된 작은 글들에서 하이데거가 사유한 동선을 통찰할 수 있다. 특히 그의 고향 메스키르히에서 1910년 발표된 최초의 글인 ‘아브라함 아 산크타 클라라’(1910)를 보면 한 젊은 사상가의 시대 비판을 읽을 수 있고, 또한 하이데거가 생각하는 시와 예술에 대한 단상, 언어와 고향에 대한 숙고를 엿볼 수 있다.

<언어로의 도상…>은 전집 제12권을 번역한 것으로, 하이데거가 1950~59년 발표한 여섯 편의 강연들, 즉 ‘언어’ ‘시에서의 언어’ ‘언어에 관한 대화로부터’ ‘언어의 본질’ ‘말’ ‘언어에 이르는 길’ 등을 모아 편집한 것이다. 사실 이 저술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유명한 명제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며 하이데거의 언어철학, 아니 존재사유를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책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번역서를 접하면서 느낄 수 있는 건 번역이 매우 까다로운 하이데거의 저서를 그의 사유에 입각해 밀도 있게 우리말로 옮긴 신상희의 노고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고 있듯이 이 책에서 신상희는 700개가 넘는 각주와 주석을 달아 하이데거 철학 이해와 번역에 대한 성실함을 보여준다. <언어로의 도상…>은 한국연구재단의 명저번역 사업에 선정돼 번역된 것으로서, 하이데거 철학뿐만 아니라 다른 철학·학문 연구자들에게도 매우 필요한 책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언어가 말한다’ ‘언어의 본질은 본질의 언어다’는 의미가 무엇이고, 게오르크 트라클, 슈테판 게오르게 등의 시 작품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길 또한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신상희
신상희는 건국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하이데거의 제자인 폰 헤르만 교수의 지도 아래 <하이데거의 진리물음과 전회>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귀국해 하이데거의 빛나는 사유를 담은 작품들인 <동일성과 차이> <이정표1> <숲길> <강연과 논문> <사유의 사태로> <횔덜린 시의 해명> <회상>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찾아서>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와 더불어 하이데거 사상을 국내에 명쾌하게 소개한 <시간과 존재의 빛: 하이데거의 시간이해와 생기사유> <하이데거와 신> 등의 개인 저술과 하이데거 사유를 치밀하게 논의한 다양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물론 이런 결과물들이 그의 진지한 사색 속에서 나왔음은 부언할 필요가 없다.

국내에 꽤 많이 나온 하이데거 번역서들 가운데 신상희가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크다. 그의 번역서들이 하이데거 철학의 국내 번역서들 중 다수일 뿐만 아니라 중요 저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이 세상에서 이 두 책의 출간을 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아마 저 하늘의 별이 된 그곳에서 자신이 남기고 간 작품의 번역물을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이것이 그의 괴롭고 아팠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문동규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 교수

http://www.hani.co.kr/popups/print.hani?ksn=559897
첨부파일 11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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