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서재필> 문화일보 2014-09-18
작성일 : 2014-09-22   조회수 : 1836
소설로 다시 살아난 ‘인간 서재필’… 고승철, 파란만장 삶 담아


‘독립신문’의 창간자로 잘 알려진 서재필. 하지만 그는 동시에 갑신정변의 주역이자 독립운동가, 한국인 최초 서양의사, 무인(武人), 체육인, 기업가였다. 소설가 고승철(60)의 신간 ‘서재필’(나남)은 시대적 혼란기에 이렇듯 다양한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서재필을 되살려낸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작가는 각종 역사문헌에 대한 고증을 통해 특히 인간 서재필의 모습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서재필은 1882년 18세에 과거시험 문과에서 최연소로 급제한 뒤 일본 도야마(戶山)군사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근대 군사교육을 받은 문인 겸 무인이었다. 하지만 약관의 나이에 김옥균, 박영효와 함께 일으킨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면서 역적으로 몰려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현지에서 한국인 최초로 의학박사가 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최초의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 창립, 독립문 건립, 만민공동회 개최 등을 이끄는 독립운동가로 변모했다. 자전거를 한국으로 처음 가져와 탔고, 야구도 최초로 보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구파와 일본·러시아 세력에 의해 다시 미국으로 쫓겨간 후 다시 조국땅을 밟았을 때는 83세의 나이였다. 추종자들은 그를 대한민국 정부의 대통령으로 추대하려 했지만 서재필은 사양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생을 마쳤다.

작가는 이런 파란만장한 삶을 기록하며 서재필을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르네상스인”이라 평한다.

소설은 지난 2008년 작가가 ‘고유’라는 필명으로 써낸 ‘서재필 광야에 서다’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기존 300쪽 분량에서 150쪽가량이 더 늘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첨부파일 서재필 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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