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2.08.30> '노태우시대의 재인식'
작성일 : 2012-08-31   조회수 : 3141
‘물태우’라고? 노태우 리더십은 높이 평가해야

강원택 교수 등 재평가 논문집 펴내


“20년 전 한중수교를 맺는 등 급변하는 국제정치적 전환기에 적극 대응한 노태우 대통령의 리더십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유약한 리더십’으로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1988년 2월∼1993년 2월) 이룬 업적의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학술서가 나왔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사진)는 박철희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 학자 12명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을 재평가한 논문집 ‘노태우 시대의 재인식’(나남)을 최근 출간했다.

강 교수는 29일 “요즘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을 보면서, 같은 보수정부지만 노태우 정부는 열악한 환경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제약 속에서도 북방정책에서 성과를 거두는 등 획기적 전환점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노태우 정부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1990년 3당 합당이 현 정당구도의 출발점이 됐고, 현재 한국이 처한 대외 질서도 노태우 정부 때 정비됐다”며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환기였던 노태우 시대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노태우 시대는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했고, 대외적으로는 공산주의가 붕괴하는 등 탈냉전 국제질서로 재편되는 시기였다. 이때 한국은 옛 공산권을 비롯해 40여 개국과 수교했고,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강 교수는 책에 실은 논문 ‘노태우 리더십의 재평가’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호감도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다는 데 주목했다. 특히 2010년 동아시아연구원 여론조사에서는 정치발전과 남북화해 분야에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강 교수는 “민주적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전두환보다 정치발전에 낮은 평가를 받고, 남북기본합의서 남북고위급회담 비핵화선언 등을 이끌었음에도 냉전적 남북관계를 이어온 이승만 박정희보다 남북화해에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인기가 없는 원인으로는 옛 권위주의 체제의 일원이었고 불법 비자금 조성으로 처벌받은 사실이 거론된다. 강 교수는 ‘물태우’로 표현된, 유약하고 소극적인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불만도 저평가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약한 리더십은 당시의 시대적 요구에 맞아떨어졌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민주화 직후 요구된 리더십은 다른 강력한 통치자의 등장이 아니었다. ‘물태우’라는 표현처럼 대통령을 희화화할 수 있는 변화된 환경을 국민들은 즐겼던 것이다.”

책에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에 대한 분석도 실었다. 이근 교수는 논문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에서 “북방정책은 전형적인 통소봉북(通蘇封北) 정책이지만 붕괴가 아닌, 체제전환을 유도하고자 한 대북정책이었다”고 분석했다.

박철희 교수는 논문 ‘노태우 시대의 대전략과 우방국 외교’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외교라는 새로운 지평선을 개척하면서도 전통적 우방인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았다”며 “진보 성향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가운데 미국과의 관계가 흔들렸던 점을 감안하면 균형감을 잃지 않은 외교방식이었다”고 평가했다.

김선혁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논문 ‘노태우 시대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1987년 12월 당시 노태우의 당선을 ‘독재로의 회귀’로 판단했던 허무주의도, ‘가발 쓴 전두환’이라며 독재의 연장으로 간주했던 냉소주의도 속단이었다”며 “노태우 시대는 민주주의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정신으로 살아 숨 쉬며 작동했던 시대였다”고 평가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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