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교우회보 2012.08.10>법의 길, 나의 길 저자 '유지담'인터뷰
작성일 : 2012-08-22   조회수 : 3302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유지담 교우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벽에 걸린 서예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최근 펴낸 자전적 수상록 《법의 길, 삶의 길》을 읽고 간 터였다. 그의 굴곡진 삶에 꼭 들어맞는 문장이었다.

유 교우는 지난 2005년 대법관 퇴임을 끝으로 35년을 함께한 법복을 벗었다. 그는 고대가 배출한 네 번째 대법관이다. 현재 법무법인 KCL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첩첩이 쌓인 혈연, 학연, 지연들 탓에 사법부에 첫 발을 들였을 때 실망도 많았어요. 좋은 일을 해도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어 섭섭한 적도 있었지요. 모든 삶의 가치기준이 돈과 권력에만 모아지는 세상이 싫어 목사가 되려고 한 적도 있었지.”

대법관 퇴임 후 2년간 틈틈이 단양의 대흥사에서 지난 세월을 정리했다. 이때만 해도 출판할 생각은 없었지만 원고를 읽어본 주변 지인들의 권유가 컸다.

“사법부에서 대법관까지 지낸 고위층 가운데 자서전을 낸 경우는 제 기억에 없어요. 나도 처음엔 알몸을 드러내는 것 같아 책으로 내기는 싫었지. 그래도 이 책이 내가 꿈꾸는 세상을 이루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해요.”

소년 유지담은 사람들의 삶을 법이 공정하게 뒷받침해 주기만 하면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야했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학업을 이어갔던 젊은 시절 이야기들은 그의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이기도 하다.

“경기고를 목표로 공부했지만 집안 형편 상 국립체신고에 진학했어요. 당시 체신고 출신은 졸업 후 공무원으로 5년을 근무해야 해 대학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4·19혁명이 일어나고 제도가 바뀌어 입시를 치를 수 있게 됐지요.”

4·19혁명 덕에 대학 입학시험 기회를 잡은 그에게 고대는 운명 같았다. ‘고려대=법대’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국회의원을 지낸 외삼촌 서태원(39정법) 교우의 영향도 컸다. 바라던 고대에 입학했지만 가난은 여전히 그의 발목을 잡았다. “낭만이 묻혀버린 삭막한 대학생활”로 그때를 기억한다. 낮에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저녁엔 중앙우체국에서 일해야 했다. 대학 2학년 말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대학의 낭만은 더 멀어졌다. 돈이 없어 동기의 졸업앨범 복사본으로 졸업을 기념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우체국 일을 마치고 최대한 시간을 맞춰 고연전도 참가하고 동기들과 응원을 하기도 했지만 함께 어울리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도 사법시험 합격 후 가입한 석우회, 법송회 모임은 지금까지도 아주 잘 이어지고 있지요.” 황유성, 이종석 교우 등과 함께하는 석우회, 김영우, 송정호 교우 등이 있는 법송회 모두 법학과 61학번 모임이다.


사시에 합격해 법관 생활을 하면서도 유지담 교우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죽을 고비도 여럿 넘겼다. 1995년 6월 29일, 그가 삼풍백화점 입구에 들어서려는 순간, 건물이 붕괴됐다.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다. 그의 호는 송은(松隱)이지만 세상은 계속 그를 원했다.

“삼풍백화점 사고에서 살아나고부터 법관으로 승승장구 했어요. 남부지원장에 울산지방법원장을 지내고 바로 대법관이 됐으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좀 더 쓰시려고 살려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릴 적부터 35년 법관 생활을 마친 지금까지도 그가 생각하는 법의 역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고 이를 서로가 인정해주는 사회를 만들고 보호하는 것이 법이 해야 할 일이에요. 누구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삶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말이죠. 법의 힘으로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어요. 궁극적으로는 법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세상이 됐으면 합니다. 제가 아직도 소년 같고 이상적인 면이 있어요(웃음).”

교우들에게 바라는 것 역시 같았다. “사랑이 넘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헌신하는 교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외형적인 번창 못지않게 내실을 기하고 세상을 바르게 이끌어가는 후배들을 키워내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유지담 교우 지인들의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흔들림에 굴하지 않고 결국은 피어난 꽃의 기록에 감명 받은 이들이었다. 인간의 자연스런 삶의 길을 만드는 법의 길을 걸어온 그의 발걸음은 남은 생을 다하는 날까지도 계속 될 것이다.

김효원 기자

http://www.kuaa.or.kr/bulletin/bulletin_view.html?cid=3&aid=9398
첨부파일 유지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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