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이야기] 남장하던 조르주 상드의 진짜 모습
매체명 : 한겨레   게재일 : 2023.12.08   조회수 : 91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비평가

방대한 자서전 7권으로 완역

 

문학살롱 드나들던 상드 눈으로

당대 프랑스 사회 총체적 조명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조르주 상드의 자서전 내 생애 이야기’(7)가 출간되었다. ‘내 생애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시대를 앞서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을 외친 인물로, 한편에서는 남장(男裝)을 하고 문학살롱을 드나들며 당대 명사들과의 숱한 스캔들로만 기억하는 조르주 상드의 진짜 모습을, 하여 “19세기 프랑스 사회를 총체적으로 반영한 역사 기록물을 만날 수 있는 저작이다. 1~3권은 가족 이야기, 유년기 겪은 나폴레옹 시대의 막전막후, 4~7권은 작가로서 혹은 사회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은 물론 삶의 순간마다 조우했던 사람들 이야기까지,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아망틴 오로르 뤼실 뒤팽 드프랑쾨이유라는 긴 본명보다 조르주 상드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이토록 긴 자서전을 쓴 이유를 길게 설명하는데, 핵심은 이 문장에 있다. “나는 늘 생각한다.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떠벌리는 것도 좋은 취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 안에서만 그 생각을 오래 품고 있는 것도 결코 좋은 취미가 아니라고.” 상드는 출생이야기부터 솔직하다. 왕가 혈통을 이어받는 아버지라면 보통 그 이야기가 서두를 장식할 텐데, 상드는 가장 강력하고 성스러운 방식으로 그리고 직접 몸으로 낳은 엄마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엄마는 가난한 새 조련사의 딸이었다. 상드의 새와의 인연은 계속되었고 1845새들의 친근함과 그들이 가진 신비로운 힘을 담은 소설 테베리노를 출간했다.

 

물론 서른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모리스 뒤팽의 영향도 적잖다. 상드가 만 4살이 되던 해, 기병대 장교였던 아버지는 낙마 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귀족 계급 제도 같은 것은 쓸데없는 허상이며 가난은 유용한 교육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딸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가난보다 더 큰 불행을 겪고 있던 한 불쌍한 소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보다 더 순수하고 더 일관성 있고 더 크리스천다우며 더 철학자다운 사람이었다. 상드는 러시아 원정에 나간 아버지가 엄마에게 보낸 연서를 포함한 여러 편지들과, 그 편지들에서 드러나는 역사적 사실들에 적잖이 살을 붙여 당대를 읽도록 돕는다. ‘내 생애 이야기내내 계속되는, 본인 이야기에 집중하면서도 당대 문화와 예술, 전쟁과 혁명, 사상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끝이 없다.

 

상드는 10대 중반, 2년의 시간 앙글레즈 수녀원 기숙사에서 보냈다. “지금껏 내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파리의 공기 그리고 지속적인 신체 발달과 성장하는 몸에는 치명적으로 생각되는 절대적인 금욕생활은 고통스럽기도 했다. 수녀원의 단조로움을 떨치기 위해 내내 악동이었지만, “신성(神性)과의 완전한 일치를 경험하기도 했다. 신비로운 종교 체험은 상드가 주 양육자였던 할머니와 늘 공허함을 자아내게 했던 엄마를 떠나 서서히 홀로서기를 가능케 한 일대 사건이었다. “나는 반쪽 신자가 되고 싶지 않았고 모래알만큼이라도 문제에 봉착하면 끝을 봐야만 했다. 어린애에게는 불가능이란 있을 수 없어서 나는 불가능한 것을 시도했다. 나는 인간에게 존재하지도 않고 비밀스럽게 감추어져 있을 절대적인 것을 믿었다.”

 

세상 사람들이 조르주 상드에 대해 갖는 궁금증은 시리즈의 6권과 7권에 거의 실려 있다. 5권까지가 상드라는 인물이 태어난 토대에 대한 설명이라면, 6권과 7권은 작가로서의 삶과 그에 얽힌 다양한 인물들에 대해 밝힌다. 18살 되던 해인 1822년 상드는 카지미르 뒤르방 남작과 결혼하지만 출산 뒤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불안해했고 다시금 병적으로 삶에 대한 혐오감에 짓눌렸다. “이름도 이유도 알 수 없는 병적 슬픔이 이어졌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읽고 신변잡기와 여행기 등을 쓰곤 했지만 책 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는남편과의 불행한 결혼생활은 상드의 우울증에 한몫했다. 탈출구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아무 재능도 없고 특별히 공부한 것도 없고 겉으로 보기에 다채로운 삶의 기억도 없고 세상사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으니 나는 어떤 야망도 없었다는 고백처럼,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파리에서 활동하는 작가 쥘 상도를 만났다. 쥘 상도는 타고난 염세주의자였지만 자신의 위대함과 고뇌를 우아하고 힘찬 단어들로 피력할 수 있는 작가였다. 마침내 1832조르주 상드라는 필명으로 첫 작품 앵디아나’(Indiana)와 석 달 뒤 발표한 발랑틴’(Valentine)으로 상드는 명사 반열에 오른다. 이 시기 상드는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 시인 샤를 오귀스탱 생트뵈브 등과도 친분을 쌓는다. 다만 상드는 쇼팽 이야기를 다른 이들과의 인연보다 길게 설명한다. 1838년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약 8년을 동행하는데, 쇼팽은 육신적 고통은 잘 참아냈지만 환각으로 인한 불안감을 이기지 못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상드는 쇼팽의 천재성만큼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 깊은 감수성으로 가득 차 있다며 사랑했다.

 

어떤 자서전은 자신의 삶에 대한 찬양, 혹은 다소간의 과장으로 가득하지만, ‘내 생애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상드 자신의 생애 이야기로 가득하다. 여러 편의 편지와 당시 상황에 대한 적확한 묘사는, 그것을 부풀리거나 왜곡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를 페미니즘의 어머니, 현실에 적극 참여한 공화주의자, 100편이 넘는 소설을 남긴 위대한 작가 등 다양한 말로 칭송한다. 하지만 상드는 내 생애 이야기에서 그 모든 이야기를 담담하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려 애쓴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상드는 책 첫머리에 타인에게는 따뜻하게, 나에게는 엄격하게, 신 앞에서는 진실하게, 이것이 이 책을 쓰기에 앞서 내가 하고 싶은 제언이다라고 썼다. 상드의 이 제언이 우리 삶과 어떻게 직조될 수 있을지, 덧붙여 우리 모두의 생애 이야기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은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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