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 지성의 몰락] [유석재의 돌발史전] 송호근 교수 “가짜뉴스 난무하는 세상에서 지식인은 죄다 숨어버렸다”
매체명 : 조선일보   게재일 : 2023.09.22   조회수 : 143

유려한 문장과 폭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짚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학자로, 사회학자인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만한 인물도 드물 것입니다. 그는 최근 ‘21세기 한국 지성의 몰락’(나남출판)이란 책을 냈습니다. 코로나라는 긴 터널의 끝이 보이던 지난해 가을에 문득 대한민국의 지성인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란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썼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공론장이 여전히 소란스러운데도, 가짜뉴스가 판을 치며 괴담과 진실이 엇갈리고 이념적 경쟁이 난무할 뿐 중심을 잡고 결연한 목소리를 내던 지성인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정치권으로부터 돌팔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데도 묵묵부답이라는 얘깁니다.

 

그는 지식인들이 대한해협휴전선이라는 역사적·군사적 단절선을 뛰어넘고 혼돈의 공론장으로 뛰쳐나와야 하며, 이데올로기가 주도했던 20세기 문명 대신 오픈AI와 챗GPT로 상징되는 21세기 문명을 수용해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했듭니다.

 

그 자신이 공론장을 주도했던 20세기 대한민국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이 비판은 일종의 자아비판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책 속에서 사금처럼 빛나는 송호근 교수의 말들이 있습니다. 그중 몇 문장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21세기 초 한국 지성사(知性史)의 중요한 사초가 될 만한 말들입니다.

 

정보들, 이념 성향에 치우친 방송사들, 그들과 결탁한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운동권 후예들이 설치는 공론장의 활극과 난무(亂舞)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촌철살인의 전문가와 신중한 지식인들은 퇴장했다. ‘사상과 고뇌의 깊이가 없다고 말해 봐야 철 지난 시대의 불평일 뿐 어떤 반향도 일으키지 못한다.”

 

한국의 공론장은 사상적 고뇌의 깊이가 없다. 파수꾼이 사라져 버렸다. 파수꾼이 없다면 공중의 교양(敎養) 수준이라도 고양됐어야 하건만 감정 배출의 수문이 열려 버린 한국에서 자체 검열을 기대하기는 난망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전제 요건인 자제(自制)는 없다. 공중의 검열 기제를 정치인, 언론, 교수, 종교인,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앞장서서 깨트렸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폭로(debunking)’의 과정이었다. 기득권 집단이 일차적 타깃이었다. 장막을 벗겨 보니 사회적 존경을 누렸던 집단들의 내부 사정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존경의 철회가 빠르게 일어났다. 공중의 존경의 철회를 축제처럼 즐겼고, 폭로의 대상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에 환호했다. 민주주의의 불가피한 비용일 것이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 같았던 모든 성전(聖殿)은 사라졌다. 환호의 끝은 만인의 투쟁. 시시비비를 가려 줄 집단이 없다.”

 

여행·취미·상담 전문가, 정치평론과 해설가, 이념투사, 프로파일러, 그 밖에 전문가연()하는 온갖 유형의 변사(辯士)들이 진을 친 공론장 개입은 득보다 실이 많다. 자신도 모르게 이념좌표에 찍히거나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심지어는 신상 털기를 당한다. 현대판 인민재판인 좌표 찍기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여기서 변사라는 표현은 근래에 보기 드문, 참으로 기막힌 절창이라 할 만합니다)

 

공론장은 그 어느 때보다 확대되고 요란한데 그 어느 때보다 날리고 경박하다. 생명이 오랜 주제는 공론장의 주제나 시빗거리가 되지 않는다. 한시적인 것, 스쳐 지나가는 것, 가연성이 높은 소재들이 공론장의 혈투로 잿더미가 되면 금세 다른 것들을 불러들인다. 무엇이 쌓이겠는가.”

 

“(포털은) 혼란한 공론장에서 이념과 취향이 유사한 정보를 유형화해 선택적으로 제공함으로써 대중의 편향성 심화를 부추겼다. 선택의 알고리즘은 사상과 고뇌의 깊이를 무시한다. 알고리즘의 내부 기제에서 공공지식인은 밀실에서 작동하는 개인 인터넷과 동일한 재료에 불과하다.”

 

지난 20여 년간 강화된 대학경쟁력 레이스에서 교수들은 논문제조기가 됐다. 대중매체를 떠나 전문학술지로 이주했다. 학자적 소명을 내려놓고 월급생활자가 됐다. 수공업자가 생산한 소품종 상품을 사는 고객은 제한적이다. 한정 판매다. 판매량과는 상관없이 상품 제조일자만 기록되면 월급을 받은 소규모 수공업자, 인문사회과학 분야 교수들의 현주소다.”

 

문명 대변혁의 물결이 인류사를 뒤바꾸는 현실 앞에서 교수집단의 대응은 두 방향이다. 이공계 교수들은 첨단과학기술의 발명에 뛰어들었다. 열기가 뜨겁다. 그런데 그 과학기술이 어디에 쓰일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연구자 자신도 예측하기 어렵다. 마치 원자력공학이 두 개의 얼굴을 한 것처럼 말이다. 디지털기술은 연구자 본인도 미래의 사용처를 확신할 수 없다. 다른 기술과 융합하면 미지의 세계가 열린다. 그 미지는 선()인가 악()인가? 이와는 대조적으로 과학기술계에서 무엇이 진행되는지 알 도리가 없는 문과 교수들은 망연자실하다.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다. 과거에 미네르바 부엉이는 어둠이 깔리면 날기라도 했지만, 지금은 날개를 접었다. 날이 새도록 자신이 택한 나뭇가지에 앉아 두리번거릴 뿐이다. 지성이 생성되지 않는다.”

 

한국의 대학교수들은 시끄럽고 거추장스런 공론장을 떠나 개인의 연구실로 은거했다. (그러나) 숭고하고 궁극적인 가치를 되찾는 일, 이것이 대학교수와 공공 지식인의 시대적 과제다.”

 

얼마 전 신문로의 한 오피스텔에서 가졌던 인터뷰에서 송 교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처리수는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태평양을 돌아 5년 만에 한반도로 오는데, 중국 동해안에는 원자로 100여 기가 있다. 도대체 어느 쪽이 문제인가? 지식인이 다 떠나버려 큰 쟁점을 정리해 줄 목소리가 없으니 정쟁으로 날이 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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