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 지성의 몰락] 지성 회복이 상생의 길 (하)
매체명 : 오케이뉴스   게재일 : 2023.08.30   조회수 : 56

'21세기 한국 지성의 몰락' 펴낸 송호근 한림대석좌교수 인터뷰

 

송 교수는 새 저서 21세기 한국 지성의 몰락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지성인 실종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7일 전화 통화에서 좌우 진자 운동(좌우 정권 교체)을 하면서 분노를 발산하느라 다 무너진 공론장(公論場)에서 지성은 무엇을 할 것인가. 과거에는 대학이 그런 역할을 했다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은 이미 다 무너졌다라고 내뱉었다. 민주화 이후 좌우 정권 교체를 되풀이하는 동안 이념 갈등에 앞장선 지식인들이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지성의 회복을 통해 상생의 길을 열여야하는데, 그 기반이 될 대학마저 정신적으로 이미 초토화됐다는 것이다.

 

 

AI 시대에 인문 사회 과학은 사망

 

일개 교수가 연구를 하는 대신 해결해야 할 일이 20~30가지나 된다. ‘내가 무얼 하는지에 대한 가치고 뭐고 간에 그런 것은 술집에서 애기하다 집어치운다.

 

문과대 교수들은 학교의 요청에 따라가기 위해서 논문을 제조하고 있다. 이공계 교수들은 과학적 가치를 올리는 데는 잘하고 있지만, 지성의 가치에 대한 질문 앞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다. 이런 것과 맞물려 있으니까 이 시대의 지식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지 물어 보면, 정말 답이 없다. 나도 답이 없고, 일반 시민들에게 물어보면 지식인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라고 반문할 것이다. 문학과 역사, 철학은 다 돌아가셨다. 황량한 정신세계만 남았다. 우리는 어디로 갈래? 물어보면 답이 잘 안 나올 것이다.”

 

송 교수는 책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에 지성인의 존재감이 더욱더 위축되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21세기에는 챗GPTAI첨단과학의 독주시대가 열렸다. 극단적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세계도 한국도 지성인의 존재감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첨단 과학의 위세에 눌려 지성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세기적인 문명시가와 지성인의 비판적 담론이 꾸준히 생산되는 외국의 실정에 비해, 한국의 사정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시대의 어른이자 지성인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자취를 감췄고, 공공지식인의 존재도 사그라들었다. 대학 내부로 빨려 들어가 은신하거나 정치권으로 흡수돼 지식인의 망토를 벗어던졌다. 대학의 사회의 리더가 아니라 추종자가 됐다.’

 

 

지성의 여과 기능이 사라졌다

 

송 교수는 전화 인터뷰에서 내면 성찰의 공간이라는 것이 바깥의 중심축과의 꾸준한 대화라든가 소통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바깥의 중심축이 없어지니까 안쪽에서는 욕망이 독버섯처럼 자랐다라고 풀이했다. “그 욕망을 부추기는 게 아파트일 수도 있고 신상품일 수도 있고 아무튼 물질적 욕망이 엄청나게 자랐다. 그 상태가 제가 바라다보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 조감도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어디에 가서 위로를 받는가, 삶의 원칙을 살아내는가. 공론장(公論場)의 공유 가치나 내가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공공선(公共善)이라는 게 있다면 내면이 채워질 텐데, 공공선과 내면의 가치를 연결해주는 게 지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지성의 여과망(濾過網)이 다 사라졌다. 나도 그렇다, 혼자 고립된 채로 남아있으면서 나의 정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물어보면 막막하다. 막막하니까 자꾸 책 속으로 가서 과거 사람은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본다. 결국 과거의 사상가들이 고민했던 바를 읽고서 다시 힘을 얻어서 나오는 판이다.”

 

송 교수는 책의 결론 부분에서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1918년 독일 뮌헨대에서 한 강연을 인용해 우리의 지식인 사회를 되돌아보게 했다. '세계의 탈주술화(합리화)를 특징으로 하는 우리 시대에서는 가장 숭고하고 궁극적인 가치들이 공공의 장에서 물러나서 신비주의적 삶의 운둔의 세계로 퇴장했거나, 아니면 개인들 상호간의 직접적 형제애 관계 속으로 퇴장했습니다."

 

송 교수의 책은 사회학자의 연구서지만, 딱딱한 학술서라기보다는 '지식사회비평'이란 새 영역을 개척한 대중적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준다. 신문 칼럼니스트와 소설가로도 활동 해온 송 교수 특유의 화려한 비유의 수사학이 감칠맛을 더한다. 송 교수는 이 책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공론장을 향한 경고? 라고나 할까"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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