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 회고: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 [김병익 칼럼] 기자들의 저술
매체명 : 한겨레   게재일 : 2022.07.14   조회수 : 80

지루한 유월을 나는 두 권의 책 읽기로 견뎠다. 김진현의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과 김동현의 <천일의 수도, 부산>은 한 지식인의 회고록과 한 도시의 지리지라는 점에서 소재와 그 전개 방식이 다르지만 저자들이 전직 기자였다는, 그래서 비슷한 문체를 가졌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앞의 책은 저자의 80여년 생애의 진솔한 고백으로 그가 체험한 우리 현대사를 돌이켜보게 하고, 뒤의 책은 부산이란 매우 흥미로운 도시를 여러 눈으로 묘사함으로써 나라 발전의 한 양상을 둘러보게 만들고 있다. 한 개인의 역사와 한 지역의 성장을 통해 나는 우리 근현대사의 빠른 발전과 그 전개 과정의 구체적인 실례를 본 것이다.

 

이 두 책이 보여주는 집필의 수법이 공통되고 있음을 여기서 짚고 싶다. 전문서임에도 까다롭지 않다는 것은 학자가 아니면서도 전문가일 수 있는 기자의 집필 태도 덕분이다. 그들도 연구하고 참조하지만 학자들처럼 주장하고 고집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주제는 자유롭다. 자신의 공적인 이력을 기록하면서도 김진현이 자신의 연애 시절을 고백하고, 일본의 전진기지로서의 부산을 말하면서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노래할 수 있는 김동현의 자재로운 진술이 그 자유로운 수법을 보여준다. 더구나 그 문체는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다. 이 기사문체의 특징은 김진현이 기자로서 “애매모호한 언어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것, 통찰력과 천착력이 출중할 것”을 권고하고, 그럼에도 “창조력과 정직할 것”을 권고하고 있음에 주의를 들여야 할 것도 확인된다. 그것은 기자가 보고 알게 된 것,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문필가’로서의 자질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자에게 학자와 다름없는 성실, 작가와 비슷한 문학적 창조력이 요구된다는 말을 하는 것은 그들이 논픽션의 문필가임을 확인해드리기 위해서다. 나는 이 두 책에 이어 20세기 후반 미국 경제의 두 라이벌의 이론과 그들이 현실 경제에 끼친 영향에 관해 쓴 책, 니컬러스 웝숏의 <새뮤얼슨 vs 프리드먼>을 읽었다.

 

경제학에 대해서는 무지한 내가 이 전문서를 끝까지 읽은 것은, 사르트르와 카뮈처럼 한 시대에 그 지향이 다른 라이벌의 대결에 대한 호기심도 작용했지만 고급한 이론과 그 현실화 과정에 대한 기자다운 글이 안기는 지적 매혹 때문이었다. 그들이 펼치는 서술의 자유로움, 씨름 경기를 보는 듯한 두뇌 싸움의 긴장감 등 기사문체의 힘과 매력들이 이 까다로운 책을 계속 붙들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기자들이 스스로의 장기를 충분히 살려, 전문 학자와 달리 발로 뛰는 추적 취재 비교를 하며, 학자·작가와 달리 접근법의 객관성과 문체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자유 스타일의 논픽션에 도전할 단계에 이미 이르렀다. 벌써 손세일의 대작 <이승만과 김구>를 가지고 있지만, 언론인들의 저술 활동은 더욱 권장되어야 한다. 우리 신문학은 기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문단이 엄연히 존재하는 오늘의 기자들은 논픽션 장르로 자신의 앞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김진현과 김동현은 그 본보기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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