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소박하게] [책] 단순하게 소박하게
매체명 : 매일신문   게재일 : 2021.08.07   조회수 : 372

태어나 한 생(生)을 건너면서 여러 사람을 알아가는 데 진정 존경의 마음이 일어나거나, 자신의 영혼에 큰 울림을 주는 지인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달인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비롯된 '지음'(知音)이나,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을 나타낸 '관포지교'(管鮑之交)가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흉금을 터놓고 사귈 수 있는 사람관계가 힘들기 때문이지 싶다.

 

 

부제 '문명을 거부한 어느 수행자의 일상'에서 알 수 있듯 책은 우연히 찾게 된 청정납자의 삶에서 도시의 문명과 인간적 욕망에 끌려가는 있는 자신을 돌아보고,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수행자의 일상에 견주어 찬찬히 더듬어 가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표면상 관찰자 시점에서 본 수행자의 삶의 기록이지만, 행간을 훑으면 저자의 마음 저 밑바닥에서 용솟음치는 삶에 대한 자기반성의 고백서이다.

'荳花村裏草蟲啼'(두화촌리초충제·콩풀 핀 마을 안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

저자와 육잠(六岑은 아호, 법명은 海光) 스님의 인연이 된 글귀이다. 저자는 직장생활하면서 일과 후 자주 가던 찻집의 벽에 걸린 이 글귀를 보자마자 마음이 빼앗겼고 이를 안 찻집 주인이 육잠 스님의 거처를 한 번 방문할 것을 권했으나 낯가림이 심했던 저자는 세 번째 권유만에 마지못해 경남 거창군 가야산 자락과 수도산 앞자락이 서로 밀고 밀치며 만들어낸 길고 좁은 골짜기, 전기도 없는 덕동마을 '두곡산방'을 찾았다. 이곳에서 그는 단청이나 풍경은 없지만 그래도 청정도량의 면모를 겨우 갖춘 토굴에서 수행하던 육잠 스님과의 운명적 대면을 했고 이후 20년 넘게 교유하고 있다.

"자연의 한 풍경으로 녹아든 덕동마을은 넉넉하진 않지만 초라하지도 않다. 세상과 돌아앉아 정갈하며, 차라리 안온하다. 그리하여 한 시절 주저앉고 싶은 그곳은 누구나 꿈꾸는 세상이다. 두곡산방은 그곳에 있다."

'靑山綠水是我家'(청산녹수시아가·청산과 녹수가 나의 집이로구나). 육잠 스님은 붓글씨를 쓰기 시작하면서 두보시를 좋아했고 그 인연으로 자신의 거처를 '두곡산방'으로 이름 짓었다. 두보시는 육잠 스님 문자향의 원천인 셈이다.

저자는 이후 수 없이 두곡산방을 드나들면서 속(俗)을 떠나 구도자의 삶을 사는 육잠 스님의 일상에 말 그대로 홀딱 반했고 이를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산방 구석구석 스님의 흔적과 글씨와 서화를 사진으로 찍고, 또 대화를 기억해두었다가 2년 전 탈고를 했고 최근 책으로 엮어냈다.

속(俗)의 거사가 승(僧)의 수행자와 인연을 맺으면서 도시생활에서 갖게 된 욕망과 악착스런 마음에서 조금씩 풀려난 자신을 발견한 저자는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이런 치유의 시간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마음먹고 지난 10여년 육잠 스님을 설득해 이번에 책이 출간됐다.

재래식 뒷간, 해우소 안 나무로 만든 화장지통, 찰흙을 빚어 만든 조사상, 토굴을 지으며 캐낸 고불 모습의 석상 두 개, 겨울 결제 철에 안거를 위해 지은 와운굴, 두곡산방을 중심으로 펼쳐진 4계절 풍경 등등.

어느 것 하나 육잠 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는 두곡산방의 소중한 물품들이자 도량을 저자는 근접촬영을 하듯이 낱낱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육잠 스님이 부지갱이로 쓴 벽의 낙서 한 줄도 놓치지 않고 그림 그리듯 설명하고 있다.

문득 얼마나 스님의 인품에 반하고 또 반했으면 이렇듯 수행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려고 했을까?

두곡산방에서의 스님의 생활은 담박한 일상 그 자체다. 낮에는 지게지고 농사짓고, 달뜨는 밤이면 선시(禪詩)를 펼치고, 벼루에 먹을 갈아 글 쓰고 그림 그린다. 한가할 땐 자연과 꽃을 노래하고, 전화 대신 서화를 그려 직접 만든 편지로 안부를 전한다.

"와운굴에서 혼자 하룻밤을 지냈다. 호롱불을 앞에 두고 좌정하니 무한적막이로다. 별을 보며 달랜 마음자리에서 조화로운 세계상을 경험했다." 육잠 스님이 와운굴을 다 짓고 초청받은 저자가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느낀 감정이다.

특히 스님은 늘 산방 주변에 자신이 죽고 난 후 화장에 쓸 나무인 '다비목'(茶毘木)을 직접 준비해 놓았고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각오로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이러한 육잠 스님의 자족하는 일상은 좀 더 높은 곳, 좀 더 편한 것에 정신이 팔려있던 저자에게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와도 같았다.

육잠 스님은 2012년 거창의 두곡산방 골짜기를 떠나 현재 영양군 입암면 금학리 오지에 또 다른 두곡산방을 마련해놓고 변함없는 수행자의 삶을 살고 있다.

잠깐 사족을 붙이자면, 기자는 이 서평을 쓰기 일주일 전 지인과 함께 우연찮게 육잠 스님의 토굴을 방문했다. 이후 육잠 스님에 관한 책이 출간된 걸 알았다. 짧은 시간 동안 스님과의 인연이 기자에게도 깊은 감동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던 차에 손에 든 이 책을 완독한 후 스님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책의 내용과 한 치 어김없는 수행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다만 두곡산방에서의 생활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현재는 유일한 이기(利器) 낡은 휴대전화를 통해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344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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