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남자들] 고유한 자신을 사회에서 지키는 법
매체명 : 채널예스   게재일 : 2018-07-10   조회수 : 56

2018.07.10 채널예스

양선희 저자 인터뷰

 

최고의 책략가이자 명재상이었던 제갈량, 주군의 권력을 빼앗은 사마의,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젊은 지휘관 주유 그리고 신으로까지 추앙받는 관우. 『삼국지』 속 인물들의 장쾌한 영웅담과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많은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양선희 작가의 『군주의 남자들』 은 그동안 우리가 놓쳐 왔던 이 인물들의 또 다른 모습에 시선을 돌린다. 수없이 찬탄을 받는 그들이 영웅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신하이자 한 사람의 조직원이었음을 선언한 것이다.


『군주의 남자들』 은『 삼국지』  인물들이 군주의 변덕에 좌절하고 동료의 질투와 배신에 상처 입는 모습을 조명한다. 적과 싸우기 전에 자신의 조직에서 먼저 살아남아야 했던 그들의 모습은 매일 치열한 직장생존기를 온몸으로 써 나가는 오늘날 샐러리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저자는 웅대했던 장수와 책사들이 조직생활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고민에 초점을 맞추고 직장인에게 필요한 ‘조직처세술’이 무엇인지 탐색한다.
 
앞서 『여류(余流) 삼국지』 를 쓰시고, 이번에는  『삼국지』 의 인물들을 재구성하여 『군주의 남자들』 을 내셨습니다. 『삼국지』  의 특별한 점은 무엇일까요?
 
『여류삼국지』 는 중국 고대사에 약한 젊은이들을 위해 『삼국지』 를 재구성한 것이었어요. 제게  『삼국지』  가 중국 고전 중에서 가장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귀곡자』  ,  『전국책』   등과 더불어 중국이 축적해 놓은 ‘음모기책’(陰謀奇策)의 사례를 공부할 수 있는 텍스트로서 의미가 커요. 특히  『삼국지』  는 소설 특유의 풍부한 스토리, 재미와 함께, 책략의 시작에서 결말까지 이르는 장구한 사연을 한번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진귀하고 중요하죠. 즉,  『삼국지』  는 가장 쉽고 재미있게 음모기책, 즉 책략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음모기책’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자백가라 불리는 중국의 고전사상은 광대무변(廣大無邊)해 보이지만 대부분 〈주역〉이 제시하는 우주의 원리, 음양체계 안에서 움직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드러난 정황, 증거, 통계, 사건 등 눈에 보이는 양(陽)의 세계에만 몰입해 있어요. 그런데 실제 일의 성사, 역사, 진실은 그 속에 숨겨진 의도와 계책, 즉 음(陰)의 세계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자는 “지혜가 나오자 큰 거짓이 생겼다”고 했는데, 큰 거짓이 음모죠. 음모는 지혜의 소산이고, 인간에게 지혜가 있는 한 음모기책은 세상을 움직이는 한 축이 될 것입니다. 양모정책(陽謨正策)뿐 아니라 음모기책을 이해해야 세상사가 더 분명히 보인다는 것입니다.
 
『군주의 남자들』  은 삼국지 인물들의 ‘조직처세술’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작가님이 고전에서 발견한 처세술은 기존의 많은 자기개발서의 처세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 같아요.
 
처세술이라 하면 대체로 ‘성공 비책’ 내지는 ‘입신출세의 비법’으로 포장됩니다. 인간을 기능화하고 기계화하는 데 주안점을 둡니다. 자신을 학대하고, 영혼을 팔고, 기계화되면서 얻는 사회적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람을 만나는 게 일이다 보니 이른바 출세한 사람을 많이 만나요. 하지만 그중에 닮고 싶지 않아 몸서리치게 만드는 모습의 삶을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죠.

제가 살피는 처세술이란 정글 같은 조직과 사회에서 ‘고유한 자신’을 지키면서 생존하는 법입니다. 한 번 태어나 백 년도 못 살고 죽는 우리인데,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글에는 ‘고유한 나’를 침해하려는 도전과 유혹이 많아요. 그래서 내 영혼을 지키기 위한 전투력과 방어술을 가져야 합니다. 제 책은 그런 처세술을 이야기합니다. 입신출세가 목적이라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거예요.

사실 중국 고전엔 처세술의 모범이 많아요. 그중 제가 지향하는 처세술은 한무제 시절 동방삭(東方朔)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그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조용하게 겸손하게 말하면서 마치 은둔자처럼 유유하게 살면 비록 시세에 영합하지는 못하더라도 화를 입지는 않는다. … 무릇 일은 여지를 남겨야지 바닥을 보이거나 아주 모자라서는 안 된다. 일을 너무 완벽하게 하려다 보면 생각이 딸리고 약해진다. 그래서 성인들이 처세하는 이치를 보면 … 만물과 시기의 변화에 따라 가장 적절한 처세법을 운용하지 고정불변하지 않으며 꽉 막혀 통하지 않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다.”
 
『삼국지』 의 처세술이라 하면 보통 유비나 조조같은 군주들의 리더십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 같아요. 그런데 작가님은 신하들의 팔로워십에 주목하셨어요.
 
『삼국지』 의 등장인물들은 각자 개성이 있으면서도 어떤 전형적 인물상을 대표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분석이 많이 이루어져 온 조조, 유비, 손권같은 지도자들과는 달리 그 외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평면적인 소개서 정도만 존재하죠. 그래서 꼭 기억하면 좋을 인물들을 추려 분석을 했습니다. 어느 조직, 어느 사회에서나 흔히 있음직한, 흔히 마주치게 되는 인물상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을 추려 보았어요. 1,800년 전 사람들이 실제로 어땠는지 완벽히 알 수는 없잖아요? 다만 소설이나 역사기록에서 발굴된 옛 인물들에게서 오늘날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팔로워의 전형적 모습을 찾아내고 이를 설명하였습니다. 옛사람 얘기이지만 결국은 요즘 사람들 얘기이기도 하죠.

제가 중국 역사에서 좋아하는 부분이 〈사기〉,  『삼국지』  에서 볼 수 있는 ‘기전체’입니다. 그 시기를 산 인물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죠.  『자치통감』  같은 역사서에서는 이런 개인의 이야기를 발견하기 힘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군주의 남자들』 도  『여류삼국지』  의 기전체식 해설서라고 하겠네요.
 
팔로워십은 리더십과 결정적으로 어떻게 다를까요?
 
둘 다 인간관계를 다루는 문제인데, 접근방법이 많이 다릅니다. 리더십의 핵심은 결국 사람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쓰는 안목과 능력, 즉 용인술이라고 생각해요. 리더십을 구성하는 여러 덕목은 좋은 사람을 잘 쓰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죠.

반면 팔로워십은 아주 복잡합니다. 타자의 의지에 영향을 많이 받기에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집니다. 팔로워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하고, 이를 알아보는 리더를 만나야 합니다. 리더를 설득하는 교감능력도 있어야 하죠. 리더가 겸양을 부릴 때와는 달리 팔로워는 실제로 낮은 지위를 받아들여야 하니 ‘자신이 곧 하늘’인 인간으로서는 자존감과 복종 사이에서 갈등도 겪습니다. 이 내적 갈등도 관리해야 합니다. 조직 내에서는 경쟁상대를 질투하고 짓밟으려는 암투가 벌어지는데 여기에도 신경을 기울여야 합니다. 자아(自我)와 타아(他我) 사이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관리하는 기술이 생존의 관건이 되는 거죠.
 
『군주의 남자들』 에 소개된 인물 중 오늘날 직장인이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을 꼽는다면 누구일까요? 늘 명심해야 할 교훈이 무엇일까요?
 
특별히 양수와 마속을 이야기하고 싶네요. 책에서 배운 얕은 지식을 끌어안고 금과옥조처럼 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남의 지식’으로 꽉 찬 자신을 영리하다고 착각하고 인재로 대접 받으려는 이들은 지금도 많죠. 그런데 지식이며 정보는 결국 과거의 일이나 죽은 사람의 생각이에요. 이걸 스스로의 생각과 지혜를 위한 비료로 써야 하는데, 자기 나무는 기를 생각도 않고 비료만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겁니다.

저는 공부하며 집중해야 할 것은 사람, 현실, 변화, 관계, 미래, 헌신 같은 것들이라 봅니다. 양수와 마속은 대단히 공부 잘 한 수재, 요즘말로 ‘엄친아’였습니다. 지식이나 얄팍한 재치는 넘쳤는데 지성이 부족했고, 사람과 세상에 대해서도 어수룩했습니다. ‘글은 말을 다 담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담지 못한다’고 하죠. 글과 말로 배운 지식을 양분삼아 자신의 뜻을 세우는 지성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지식은 자기를 망치는 기술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인물들이 이 두 사람입니다.

책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언젠가 깊이 탐구하고 싶은 인물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군주의 남자들』 에는 조자룡이 빠졌어요. 그는 『삼국지』 에서 유일하게 패배를 모르는 백전백승의 장군이죠. 실력 하나만으로도 존경받았는데, 이기적 신념이 아닌 헌신적 신념을 따랐고, 자기 영혼을 지킨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휩쓸리지 않아 갖은 고생을 하고도 높은 자리에는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유비에게 충성하면서도 개인보다는 조직과 백성에 더욱 충성심 깊은 인물이었기에 유비의 오나라 정벌에 대해 아무도 반대하지 못할 때 나서서 극구 말리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건 조자룡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아요. 출판사가 원고 앞부분만 받은 채 반 년을 기다렸는데, 제가 뒤의 조자룡의 이야기를 쓰지 못해서였어요. 하지만 조자룡을 생각하면 너무 감정이입이 되어 쓰기 힘이 들더군요. 결국은 쓰기를 포기했습니다. 언젠가 편안하게 조자룡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긴 해요.
 
작가님은 동양고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을 계속해오셨는데요. 다음에 이야기해 보고 싶은 고전이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국내에 중국 고전이 소개될 때는 굉장히 진지하고 학문적인 접근이 주류입니다. 얼마나 원본에 가깝게 번역했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요. 물론 이런 훌륭한 번역 덕분에 저도 중국 고전을 읽는 게 수월하니 번역자들께 늘 감사합니다.

한데 고전들을 현대적 관점과 말로 바꾸고 우리 시각으로 재해석하면, 유용하고 쉽고 재미있고 요즘 세상에서도 통하는 통찰력을 많이 얻을 수 있어요. 그런 작업은 학자가 아닌 저 같은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 머릿속에 있는, 쓰고 싶은 책 목록만 해도 스무 권은 넘을 거예요. 차례차례 해볼 생각이지만 다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계속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는 분야들이 생기니까. 
 
그중 가장 특별한 것만 살짝 소개해 주세요.
 
제자백가 중 동화로 엮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좋을 부분이 꽤 여러 군데 있어요. 그래서 동화를 써볼까도 생각합니다. 〈적우 2편〉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고전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다시금 한다면  『삼국지』  에 이어 『서유기』 를 다뤄보자고 생각하고 있죠. 종교적 색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서유기에 깔린 인간의 역학관계, 권력자를 비유한 괴물과 요괴의 모습, 중국식 모략에 정말 전율이 느껴지곤 하죠. 물론 작가는 명나라 소설가 오승은이지만, 중국의 축적된 집단창작의 힘이 느껴져요.  『서유기』  의 한 부분만 따와도 영화나 소설 한 편이 거뜬히 만들어집니다. 이 엄청난 텍스트를 어떻게 지금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자양분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은퇴를 하고 시간적 여유가 더 생기면 오늘날을 배경으로 한 창작소설을 더 쓰고 싶어요. 어쨌든 내 인생에서 가장 진지한 일은 ‘소설가’라는 일이거든요.
 

첨부파일 군주의 남자들_앞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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