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처럼] 2016-01-29, “사회갈등 혼란시대, 퇴계의 선비정신 절실”
매체명 : 농촌여성신문   게재일 : 2016-01-29   조회수 : 718
퇴계선생은 높은 경지와 인품·학문을 이룬
대표적 선비…21세기 세계 석학들도 본받아

가정·사회혼란으로 강력범죄 빈발…
퇴계선생 가르침 실천해 극복해야




지금 우리는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직장 상사와 부하 간 소통 부족으로 심각한 갈등과 진통을 겪고 있다.
어른들은 이런 갈등과 함께 심각한 취업 불안, 불투명한 미래를 마주한 젊은이들을 질책보다 높은 경륜과 지혜로 지도하고 격려하며 따뜻하게 보듬어야 한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남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선비정신을 정립하고 이를 솔선수범한 퇴계(退溪) 이황선생의 교육사상을 되짚어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에 퇴계선생의 선비정신을 전파하고 있는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의 김병일 이사장을 만나봤다.

선비는 인격수양을 완성하고
공동체 위한 행동을 하는 사람
“저는 194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대 사학과와 행정대학원에서 학업을 마치고 1971년 행정고시를 거쳐 공직에 발을 딛었죠. 30년 넘게 경제관료로 봉직하며 통계청장, 조달청장, 기획예산처차관, 금융통화위원, 기획예산처장관 등을 지냈습니다.
2005년 퇴임 후 경북 안동으로 내려와 2008년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과 한국국학원장을 맡으면서 선비정신의 확산과 국학진흥을 위해 힘을 쏟고 있습니다.”

김 이사장은 장관을 지낸 고위관료라는 느낌을 받을 없을 정도로 겸손과 정중한 자세로 기자를 맞았다.
먼저 선비정신이란 무엇이며 왜 선비정신이 필요한 지 물었다.
“선비정신이란 선비들의 삶 속에 깃들어 있는 정신을 말합니다. 선비는 우리 전통사회에서 지배계층이었던 양반 중 인격적으로 높은 인품을 지녔던 분들을 말합니다. 이 분들은 지덕(知德)과 의리(義理), 범전(凡節)을 갖추고 올바른 행동으로 남들을 배려하며 돌보는데 솔선수범했습니다.

선비는 인격수양을 완성하고 공동체 발전에 필요한 행동과 역할을 해낸 분들이었지요. ‘박기후인(薄己後人)’이라고 자기를 낮추고 남을 크게 배려하며 받드는 사람이 선비지요. 그리고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를 생활 모토로 해 세상에 나가 감동적인 리더십을 보이는 사람이 선비라고 봅니다.”

김 이사장은 이 시대 남을 배려 돌보는 감동의 리더십 발휘가 절실하다며 다음과 얘기를 이어갔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에 따른 압축성장으로 세계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빠른 기간 안에 국민 1인당 3만불 소득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발전으로 물질적 풍요는 누리게 됐으나 인성교육이 부실하고 사회갈등과 혼란이 가중돼 행복지수는 세계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합니다. OECD 국가 중 11년째 자살률 1위, 그중 노인자살률은 2위와 큰 격차로 1위를 차지하며 이마저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지요. 이런 극심한 혼란과 갈등으로 강력범죄와 고소, 고발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요.
가정을 보면 인간 이하의 행동으로 부모 안 모시기, 유산 다툼 등 부모형제간 귀찮은 존재로 여기며 갈라서기 일쑤입니다.”

사회·가정혼란 병폐 막기 위해
선비정신 부활과 실천 시급
“이러한 사회와 가정의 병폐를 막기 위해서는 퇴계선생이 몸소 실천한 선비정신의 부활과 실천이 시급합니다.”
퇴계선생의 삶과 그로부터 배워야 할 가르침이 무엇인지 물었다.

“퇴계선생이 높은 경지의 인품과 학문을 이룬 조선의 대표적 선비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압니다. 조선 최고의 유학(儒學)자로 동방의 주자(朱子)로 숭상받고, 21세기 세계인이 따라야 할 퇴계학(退溪學)을 이뤄내 세계석학이 모여 그를 기리는 연구포럼을 갖는 대학자이며, 선비입니다.
퇴계선생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학문적 성취 못지않게 생활에서 완벽하게 이를 실천한 삶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퇴계선생은 지행일치(知行一致), 지행병진(知行幷進)의 철학을 완벽하게 실천하셨습니다.

퇴계선생은 검소, 청렴하고
사회적 약자를 도운 존경스런 분
퇴계선생은 검소한 생활을 했어요. 도산서원에는 선생께서 직접 설계한 혼자 공부하시던 방이 있는데, 3칸 크기의 작은 방으로 방 한 칸, 마루 한 칸, 문지방 한 칸으로 책상과 이부자리 외엔 공간이 없습니다. 60세에 지어 10년 넘게 사용하셨지요.
유명인사인데도 불구하고 털옷을 10년 이상 입으셨어요. 매일 3찬의 밥을 드셨고요.

그리고 선생은 청렴하셨어요. 풍기군수와 단양군수를 지내다 귀향 할 때, 이삿짐 보따리는 3개였답니다. 책보따리 2개와 옷에 수석 두개를 싼 보따리를 합쳐 3개 밖에 안 됐습니다. 1년간 풍기군수를 지내고 귀향 뒤엔, 빌려 쓴 책보따리를 되돌려 줬었다고 합니다. 세금도 백성보다 먼저 내 세금내기 경쟁에 불을 지피는 등 엄격히 자기관리를 한 분이었어요.
선생은 또 약자를 도운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특히 여성과 천민, 아이들 등 사회적 약자를 따뜻하게 돌봐준 아름다운 일화를 많이 남긴 존경스런 분이셨습니다.

선생께선 21세에 결혼했는데 27세 때 첫 부인과 사별했어요. 30세에 두 번째 부인을 맞았습니다. 불행하게도 두 번째 부인은 정신이 온전치 못했습니다. 부인이 정신이 혼미해 선생의 흰도포에 빨간 천을 덧붙여 선생을 곤란하게 만들었지요. 제사장에는 엉뚱한 제물을 얹어놓기도 했지요. 그런 부인을 선생께선 지극한 정성으로 감싸고 배려했습니다.”

한편, 퇴계선생은 공부가 하고 싶어 엿듣던 대장장이 천민인 배순을 불러들여 6개월간 개인교습을 시켰다고 한다. 글을 깨우친 배순은 돈이 없어 구리로 동상을 만들지 못했지만 철상(鐵像)을 만들어 그 앞에서 20년 공부에 매진해 신분상승으로 스승의 가르침에 보답했다고 한다.
퇴계선생은 상대방이 반말을 듣기 싫어하면 존대어로 대하듯 인간관계도 상대가 원하는 것을 간파해 관계를 가져야 가정화목과 직장 화합, 사회안정을 가져온다고 역설했다. 선생은 뭇 백성을 따뜻하게 돌본 진정한 휴머니스트라고 김 이사장은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끝으로 퇴계선생의 사상과 가르침 더 자세히 배우고 익히려면 도산서원이 개최하는 1박2일과 2박3일의 교육과정에 참가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 이사장이 저술한 ‘퇴계처럼’과 최근 출간한 ‘선비처럼’이라는 책을 읽으면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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