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처럼], 2015-11-21, 21세기 문화강국, 방방곡곡 선비정신 깨워라…『선비처럼』
매체명 : 매일신문   게재일 : 2015-11-21   조회수 : 672
선비처럼/김병일 지음/나남 펴냄

19세기 후반, 서구 제국주의 침략의 손길이 동아시아에 밀어닥쳤을 때, 조선과 일본은 모두 쇄국정책을 고수했다. 우여곡절 끝에 양국은 개항했지만 두 나라의 앞날은 달랐다. 일본은 갖은 신고(辛苦) 끝에 서양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열강으로 성장했고,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했다.

조선과 일본이 전혀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원인은 다양하다. 문(文)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선비정신과 무(武)로 대표되는 일본의 무사정신도 두 나라가 다른 길을 걷게 된 원인 중 하나다. 오랜 세월 양국을 떠받쳐온 선비정신과 무사정신은 19세기 격랑의 세월과 맞닥뜨렸을 때 전혀 다른 반작용을 보였다.

우월한 총포와 기술로 무장한 서양세력에 대해 조선의 선비정신과 일본의 무사정신이 취했던 상반된 태도를 아주 간단하게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의 선비정신-그깟 총포가 세면 얼마나 셀 것인가. 오직 이(利)와 병(兵)으로 세상을 누르고 얻고자 하니 그 세월이 얼마나 갈 것인가.

일본의 무사정신-벤 자는 살고, 베인 자는 죽는다. 저들의 총포가 우리의 총포보다 우월하니 엎드려 참고 배워서 일어서야 한다.

조선과 일본의 이 같은 태도는 양국의 앞날에 상이한 긴 그림자를 남겼다.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지가 되었고,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하고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이 되었다. 그 결과로 한국의 선비정신은 패배주의자들의 자조, 실속 없는 겉치레, 심지어 탁상공론을 일삼으며 나라를 망친 사고방식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특히 일본의 집요한 조선민족 비하정책에 따라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 선비처럼은 도산서원 원장이자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인 김병일 선생이 안동 도산에 수년간 기거하면서 쓴 글과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퇴계 선생에 대해, 선비에 대해, 지금 세태에 대해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유의 궤적들이다.

책은 "조선시대 우리나라는 군대나 경찰의 무력이 아니라 선비문화로 마을마다 자치적으로 질서와 평화를 누린 세계 유일의 문명국가였다. 시골 산골에도 마을마다 선비가 있어 시를 짓고 역사를 논하고 글을 가르치는 고품격 사회였다. 무력이 약했던 탓에 일본에 침탈당함으로써 그 고고한 의미가 가려졌을 뿐이다"고 말한다. 서양에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선비정신이 있다는 것이다.

선비는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이익보다는 가치를 추구하는 지도자다. 이를 위해 선비는 자신을 닦고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태도를 견지했다. 같은 시대 중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이 풍부한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집에 살며, 산해진미를 먹고 군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조선의 선비는 검소한 살림살이와 솔선수범으로 삶의 모범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선비는 학문과 덕성을 겸비했으며, 침략에 저항하는 평화적인 국제질서를 지지했다. 불가피하게 국난에 직면했을 때는 자신의 안위를 잊고 적에 맞섰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선비들은 국난을 초래한 책임을 통감하며 조야(朝野)에서 전쟁을 지휘했다. 그들은 붓을 사랑했으나 국난에 임해서는 붓 대신 칼을 들고 왜군에 맞섰다.

1910년 일본이 조선을 병탄하자 선비 이만도는 24일 동안의 단식 끝에 순국했고, 석주 이상룡은 종가의 재산을 모두 팔아 만주로 무장투쟁의 길을 나섰다. 선비의 고장 안동에서는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유공자만 360여 명이 배출되었다. 이는 전국 최대 규모다. 일제가 두 차례나 퇴계 종택을 불태워버린 것도 선비정신이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고, 일본 침략에 저항하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겸손과 배려, 공경과 헌신의 정신이 물씬 풍기는 고품격 전통문화가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묻혀 있으며, 이를 깨울 때 우리는 21세기 문화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책은 총 6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인성회복을 위하여, 2부 공감과 배려, 행복의 지름길, 3부 다시 선비를 생각하며, 4부 전통에서 배우는 지혜, 5부 사람향기는 만 리를 간다, 6부 정의 주장보다 따뜻한 가슴을 등이다.

지은이 김병일은 기획예산처 장관을 역임했고, 현재 도산서원 원장, 영남대 석좌교수 등을 맡고 있다.

420쪽, 1만8천500원.
첨부파일 선비처럼 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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