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의 마지막 7일], 2015-09-28,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이고 진짜 통곡했을까
매체명 : 머니투데이   게재일 : 2015-09-28   조회수 : 863
영화 ‘사도’의 흥행몰이가 심상치 않다. 드라마로도 여러 번 다뤄진 사도세자 이야기를 이준익 감독은 왜 영조가 굳이 ‘뒤주’에 아들을 가둬 굶겨 죽었는지, ‘아버지 영조의 선택과 슬픔’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에서 영조는 사도가 뒤주에서 죽은 것을 확인한 후 뒤주 속 아들의 얼굴과 손을 만지며 세자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한다. 적어도 그 장면만 보면 아들을 잃는 아비의 슬픔, 그리고 영조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다른 사연에 관심이 갈 만도 하다.

하지만, 역사책 ‘영조와 사도’는 사도는 울화병을 앓았을지언정 결코 광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 김수지는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의 ‘역사 변호인’을 자임하고 나섰다.

변호인의 주장을 들어보자. 사도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자간 갈등의 진짜 원인, 특히 아버지 영조가 왕에 됐던 정치 상황을 함께 볼 것을 권한다.

영조는 숙종 때 서인이 분열해 탄생한 노론과 소론의 갈등 가운데 노론을 등에 업고 왕좌에 올랐다. 영조는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심과 천한 무수리의 자식이라는 출신 성분의 한계, 나아가 어쩌면 숙종의 아들이 아닐 수 있다는 소문으로 평생 콤플렉스를 안고 살았다. 이를 모른 척 한 노론은 영조의 정치적 우군이지만, 실은 영조의 아킬레스건을 잡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저자는 사도세자가 아버지에게 살해된 이유를 영조 스스로 ‘탕평책’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정치적 토대인 노론의 손을 완벽하게 들어준 데서 찾는다. ‘노론’ 일색으로 정리된 정치판에서 소론 측과 함께 성장한 세자는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콤플렉스 속에 권력을 지켜야 했던 영조는 아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엄격했다. 친소론 성향의 세자는 노론의 눈엣가시로 됐고, 왕 입장에서도 소론 측의 주장을 따르는 세자는 자신에 반기를 드는 젊은 예비 권력일 뿐이다.

영화 ‘사도’에도 나오지만, 영조는 장성한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면서도 노론의 공격에 대해 총알받이로 세자를 앞세우고 신하들 앞에서 세자를 비웃음거리로 만들기 일쑤였다. 대리청정 햇수로 9년째, 나이 23살에 공식적으로도 차기 권력인 한 나라의 세자가 공개 반성문을 썼다고 기록한다(292쪽).

저자는 “영조는 세자가 제왕의 길을 가기에 인격적으로 부족한 존재인지 세상이 알기를 원했다”며, “조선의 임금은 영조이고 그 누구도 영조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수시로 보여주길 원했다”고 말한다.

특히, 저자는 신하들이 세자의 편을 들면 들수록 영조가 세자를 더 미워하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음을 충분히 알았다고 꼬집는다. 왕과 신하들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세자는 발버둥 칠수록 아버지와 사이는 더욱 멀어지고 오해와 불신이 깊어졌는데, 이 를 영조가 모두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영조 32년. 세자가 정무를 보는 낙선당에 불이 났다. 화재의 원인이 세자가 술을 마시고,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았는데 세자가 그것 때문에 분풀이를 하다 촛대가 넘어져 불이 났다는 식으로 말이 번졌다. 세자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고, 불을 낸 것도 아닌데 잘못을 반성하는 하령을 발표해야 했다. 영조는 세자의 어떠한 변명도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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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는 결국 세자를 버렸다. 그리고 세손을 택했다. 훗날 정조가 된 세손이 9살 됐을 때 ‘세손에게 보이는 글’을 첩으로 만들어 사관에게 봉안하게 하고 “세손은 의젓함이 성인과 같다”고 말했다. 권력을 세자가 아닌 세손에 대한 마음을 굳힌 영조는 세자의 반란 의도가 있는지까지 시험하며 시쳇말로 ‘간’을 봤으니, 사도의 죽음은 피할 수 없었을 듯하다.

한편, ’사도의 마지막 7일‘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7일간을 사도의 독백을 빌어 서술한 소설이다. 뒤주 속에서 갈증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도가 아버지에 대해 어떤 두려움으로 병들어갔는지를 문학적으로 그리면서도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

영조는 무려 52년간 집권했다. 조선에서 최장기 집권이다. 장성한 아들을 죽이고 어린 세손을 후계로 삼은 영조가 탐욕스런 권력욕이 없었다고 말하기엔 결과적으로도 그의 집권은 너무도 길지 않았나.

‘뒤주 속에서 죽은 사도’는 ‘부자지간에도 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준 아버지의 정치적 선택의 결과일 뿐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수긍이 가는 이유다.

영조는 세손에게 작은 선물을 남김으로써 세자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일까. 그것은 적어도 아비를 역모로 만들지 않아(대신 미친 사람으로 만들어) 정조의 정통성에 흠집을 내지 않은 것, 더불어 세손을 앞서 죽은 세자의 이복 형(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해 형식적이나마 장자계승의 모양을 갖추어 준 것. 하지만 이 의리조차 결국은 권력을 위한 것이었다면 영조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아버지였다는 평가를 들을 만도 하다.

◇ 영조와 사도=김수지 지음/인문서원/360쪽/1만7000원
◇ 사도의 마지막 7일=김상렬 지음/나남출판/292쪽/1만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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