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2015-08-21, “고 정주영 회장은 시대의 거인입니다”
매체명 : 농촌여성신문   게재일 : 2015-08-21   조회수 : 984
남들이 평생 하나하기 힘든 일을
동시에 여러 건 해내는 저력 발휘
폐유조선으로 물막이공사 완공
국토확장…국내 최대농장주 등극




우리경제의 활로인 수출성장 기여도가 금년 들어 -0.2%대로 감소되고 있다. 이 같은 수출둔화 탓인 듯 지난해까지만 해도 세계 500대 기업에 한국기업 6개가 진입했었지만, 지난 7월 발표에는 삼성전자, 한국전력 등 두 기업만 순위에 들었다.
특히 한국의 성장을 주도하는 자동차, 조선, 철강 등의 위축이 커 걱정이다. 이런 상황에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 한 장으로 시작된 세계 최대의 조선소, 오일쇼크 와중에 일군 중동신화, 현대자동차의 탄생 등 정주영 회장의 탁월한 경영기량이 그립기도 하다.
최근 고 정주영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이란 전기가 출간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을 쓴 이데일리 허영섭 논설실장을 만나 정주영 회장의 위업을 되새겼다.

서민도 거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거인
“제가 정 회장을 만난 것은 1981년 정 회장이 전경련회장을 맡아 할 때였죠. 전 이때 전경련에 입사한 신참직원이었죠. 마침 정주영 회장의 주도로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바덴바덴의 신화’가 이뤄진 뒤라 더욱 경외의 마음을 가지고 모셨지요. 신입직원이라 숙직을 하면 회장실과 임원집무실을 들러 밤새 이상이 없나 점검을 했죠. 이때 회장님의 책상에 놓인 메모철에 이면지(裏面紙)를 재활용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요. 그 후 정 회장이 1992년 대통령 선거에 도전할 때 정치부기자로 정 회장을 다시 만났지요. 선거유세를 기업활동보다 더욱 열심히 바쁘게 뛰는 모습을 보고 또다시 감동을 받았지요. 선거에 패한 이듬해 전 ‘정주영 무릎을 꿇다’ 그리고 이어 1999년 ‘현대그룹 50년을 이끈 주역들의 이야기’란 책을 내게 됐습니다.”

허 실장은 정주영 회장 탄신 100주년을 앞둔 지난해 경향신문에서 같이 일했던 나남출판사 고승철 사장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 정주영 회장 관련된 세 번째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한국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정주영 회장의 불꽃같은 삶을 다시 조명해야 된다는 욕심으로 이 책을 썼다고 허 실장은 말했다.
“정주영 회장은 우리의 기성세대처럼 가출과 고된 노동을 감내하면서 빈대가 득실거리던 숙사에서 잠을 설쳤다고 합니다. 신혼시절에는 종로 낙산언덕바지에서 물지게를 지는 등 서민도 거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했죠. 우리 모두에게 경외와 친밀감, 가능성을 보인 거인이었던 겁니다.”

집념과 기지, 뚝심으로
한국 중공업 발전 점화
허영섭 실장은 정주영 회장의 성공비결 첫째로 집념을 꼽았다.
정 회장은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군 송산면 아산마을에서 6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정 회장의 부친은 그를 동생들의 부양을 이끌 으뜸 농사꾼으로 키우려 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농사로는 승부가 없다고 보고 도시로의 가출을 넘봤다. 정 회장은 어버지와의 네 차례에 걸친 끈질긴 숨바꼭질 끝에 서울로 가출성공의 길을 밟는다.

정 회장의 두 번째 성공비결은 불굴의 도전정신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 방문 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한다. 이때 박대통령은 현대건설이 국내 최초 해외에 진출해 태국과 동토인 알라스카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정 회장에게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주역으로 내세운다.
서울-오산, 대전-옥천 등 경부고속도로 구간 전체의 30% 공사를 정 회장에게 맡긴 것이다.
정 회장은 공기(工期)를 맞추기 위해 몸소 착암기를 들고 터널을 뚫는 저력을 보인다. 이를 본 박대통령은 빈국(貧國) 탈출의 첩경인 중공업을 빨리 일으키기 위해 정 회장에게 자동차, 조선업 참여를 독려한다.

남들은 일생 동안 고속도로 하나를 수주할까 말까 하는데 정 회장만은 동시에 여러 건을 해낸 도전정신과 저력이 있다고 간주하고 박대통령은 그에게 일을 맡긴다.
정 회장이 안 될성 싶은 일도 과감히 맡아하는 것은 소시적 나폴레옹 전기(傳記)에서 읽었던 ‘불가능은 없다’라는 글귀에 따른 것이라고 허 실장은 말했다.
정주영 회장의 세 번째 성공비결은 탁월한 기지(機智)라고 한다.

1976년 정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항만시설공사를 수주한다. 소요되는 기자재 모두 한국에서 조달해 공사하기로 결심한다. 콘크리트는 5톤 트럭으로 20만대, 1만 톤 짜리 12척 분량, 거기에 12층 건물크기의 철구조물 500톤을 2000km 뱃길로 운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긴 철구조물은 사고에 대비한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끈에 매달아 바지선으로 날랐다. 정 회장만이 할 수 있는 용단이었다.
도전과 기지, 모험으로 성공을 거둔다. 그 후 정 회장은 유가파동으로 중동건설 붐이 식자 중동에서 쓰던 중장비를 한국으로 되들여와 서산간척지 개발에 나선다.

서산간척지 개간, 북한에 소떼몰이
세계 최대 이벤트 연출
박대통령은 정 회장과 국토를 확장해 식량안보를 이룩하겠다는 의지로 투합해 개간을 한다. 1984년 2월 정주영 회장은 이 공사의 마지막 물막이구간에서 거센 물살을 폐유조선으로 막아낸다. 소학교 출신인 정 회장의 기지가 돋보이는 ‘정주영식 공법’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쾌거를 이룬다.
국토가 확장된 서산간척지에서 비행기로 볍씨와 목초씨를 파종하고, 농약을 뿌리는 한국 최대의 농장주로 등극한다. 부친의 농토 확장의 유지를 받든 서산간척지 개간은 그가 이뤄낸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했다.

정 회장은 여기에서 키운 소 1000마리를 1998년 6월16일 판문점에서 트럭 50대에 실어 북한에 보내는 소떼몰이 이벤트를 벌인다. 개국 이래 최다의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정주영식 세계 최대의 홍보행사가 연출된 것이다. 이후 정 회장은 금강산관광사업권을 따내 남북교류와 통일의 물꼬를 튼다. 정 회장은 이후 소 1000마리를 더 보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86세에 세상을 등졌다.

허영섭 실장은 이번 책에도 독자들 많은 관심을 보여 기쁘다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정주영 회장은 기업인, 정치인, 체육인 등 여러 역할을 통해 열거하기 힘든 많은 일을 해낸 시대의 거인이었습니다. 그가 있어서 오늘의 발전이 이룩됐다는 점에서 그의 부재(不在)가 무척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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