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과 중국], 2015-07-17, 고려대학교교우회, 6·25 전쟁이면에 숨어있던 비밀들
매체명 : 고려대학교 교우회   게재일 : 2015-07-17   조회수 : 1046
한국전쟁에는 두 가지 미스터리가 있다. 첫째, 6·25전쟁 개시 2일만에 소집된 유엔 안보리에 유엔주재 소련대표가 불참하였다. 둘째, 6·25전쟁 초기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소련이 북한의 지원요구를 묵살하였다. 스탈린은 직접 전쟁을 계획·결정하고는 정작 전쟁이 발발하자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였다. 상식적으로 안보리에 참석하여 거부권을 행사하여 유엔군의 결성 및 참전을 막았어야 하나 수수방관하기도 했다. 때문에 북한군은 서울을 기습점령하고도 서울에서 3일이나 우왕좌왕했다. 스탈린은 김일성이 긴급히 요청한 도하장비 지원을 거부하였다. 소련 군사고문단은 개전 직전과는 달리 전투현장 지휘를 회피하고 통신장비의 사용도 제한했다. 과연 6·25 전쟁 이면에는 무슨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

65년 전 크레믈린의 검은 복심과 전쟁의 주연들인 스탈린, 마오쩌둥 및 김일성의 은밀한 삼각관계를 해부한 이세기 전 통일원장관의 신간『6·25전쟁과 중국』이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6·25전쟁의 ‘불씨’는 1950년 1월을 전후한 스탈린과 마오쩌둥간의 모스크바 중소동맹조약 협상 과정에서 잉태하였다. 스탈린은 양측 간의 치열한 협상과정에서 마오쩌둥의 ‘제2의 티토화’가능성을 우려하였다. 특히 미국의 애치슨 선언(1950.1.12.)으로 향후 미중간의 협력이 진행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스탈린은 김일성을 끌어들여 한반도에서 미·중이 충돌하는 1석2조의 전략을 구상하였다. 미중 양국의 충돌로 상호협력을 차단하고 중국을 서방으로부터 고립시켜 모스크바의 위성괘도에 머무르게 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국제정치의 비정한 음모를 각종 비밀문서와 자료를 통해 치밀하게 밝히고있다. 스탈린이 체코슬로바키아 클레멘트고트발트(Klement Gottwald)대통령에게 보낸 ‘1950 6월 27일 소련대표의 안보리 불참 이유’관련 비밀 전문을 보면 6·25전쟁 최대의 불가사의인 ‘소련의 안보리 거부권 행사 포기’는 실수가 아니고 스탈린의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미군이 ‘한국전에 묶여 유럽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도록’하려는 스탈린의 복안과 남한의 무력적화 통일이라는 김일성의 야심은 양립할 수 없었다. 김일성은 스탈린의 거대한 장기판에 놓인 하나의 졸(卒)에 불과했다. 빨치산 활동 경력이 전부인 북한의 김일성과 박헌영은 당시 국제 정세를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이 없었다.

이 책은 스탈린의 전쟁 의도와 중국의 역할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였다. 또한 향후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중국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저자는‘6·25전쟁의 기원, 누가, 언제, 왜, 무엇을 위해 전쟁을 결정하였는가?’라는 의문에 체계적인 논리와 실증적인 자료 분석으로 정답을 제시하였다. 특히 저자는 1970년대부터 문제를 깊이 해부하였다. 저자의 학문적인 혜안과 집념은 후학들이나 독자들이 한반도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덕목이다. 주저없이 일독을 권한다.
이전글 [한국 현대문화의 형성], 2015-07-24, '모던걸'부터 '나꼼수'까지…시대를 말하는 문화현상
다음글 [조선총독부], 2015-07-23, 박정희도, 김정일도 ‘상록수’를 읽고 감동했다는데…
prev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