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과 중국], 2015-06-25, “스탈린이 마오쩌둥 견제하려 6·25 전쟁 일으켜”
매체명 : 중앙일보   게재일 : 2015-06-25   조회수 : 1073
1950년 6월 2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안전보장이사회. 6·25 발발 사흘째인 이날 의제는 유엔군 투입이었다. 당시 중국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다. 안보리 회원국 중에선 소비에트연방이 거부권을 행사할 유일한 국가로 지목됐다. 그러나 이날 회의장에 소련 대표는 불참했고, 안보리는 유엔군 참전안을 통과시켰다.

 동구권에선 “스탈린이 이상해진 게 아니냐”는 불평이 체코 클레멘트 고트발트 대통령을 중심으로 나왔다. 그러자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총리는 체코 주재 소련 대사를 불러들여 이렇게 명한다. “고트발트에게 전하라. 불참은 내 지시였다고.”

 지난해 발견된 소련 비밀외교문서의 내용이다. 이세기(79·사진) 전 국토통일부(현 통일부) 장관은 신간 『6·25 전쟁과 중국』(나남)에 이런 사실을 소개하며 “스탈린이 미국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으로 6·25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스탈린은 6·25를 최대한 오래 끌고 가면서 미국은 물론 마오쩌둥의 피로감을 누적시키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몇 가지 추가 근거도 제시했다. 6·25 발발 두 달 후인 50년 8월 말 당시 김일성은 부산을 점령하기 위해 스탈린에게 도하(渡河)장비와 무기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전쟁 전만 해도 “조기에 끝내라”는 지시를 내리며 다해 줄 것처럼 했던 스탈린은 답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9월 15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에도 스탈린은 북한군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마오쩌둥에게 파병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전 장관은 “스탈린과 마오의 고래 싸움에 등이 터져 발생한 것이 6·25라는 쓰라린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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