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 다른 시간], 2015-06-18, [새책] ‘같은 공간, 다른 시간’ 1960년대 민초들의 생생한 이야기
매체명 : news1   게재일 : 2015-06-18   조회수 : 1023
문학과 역사에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과 사건이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는 누락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진정한 시대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다양한 지역과 계층, 연령을 아우르는 좀 더 폭넓은 시선이 필요하다. 또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고찰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도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희(古稀)가 지난 원로 인류학자이자 고려사이버대 총장인 김중순 씨가 자신의 뜨겁던 젊은 날의 기록이자 한 시대의 증언을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기고자 오랜 시간의 숙고를 거쳐 반세기가 지난 오늘 펴낸 책이 바로 같은 공간, 다른 시간: 1960년대 한 법학도가 바라본 한국의 참모습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1960년대 한국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도시화, 경제개발, 민주화 운동 등 정책과 사상의 흐름으로만 파악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이러한 추상적 이해에서 놓치기 쉬운 그 시절 우리 민초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1963년 10월부터 1965년 6월까지 대학원생 신분으로 법의식 조사(* 저자는 1983년 10월 당시 버마 아웅산 테러로 순직한 故 함병춘 박사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친다고 밝혔다. 법의식 조사는 함 박사가 연세대 교수 시절 추진한 프로젝트였다)를 위해 제주도에서 시작해 소양강에 이르기까지 전국 자연부락 500여 마을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우리 산하와 서민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이국적인 아열대 섬 제주에서 접한 아름다운 다도해와 강인한 해녀들, 낭만의 항도 목포에서 만난 넉넉한 인심과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토박이 처녀, ‘병풍 너머’ 인터뷰를 요구하던 괴산 양반마을의 할아버지, 울산 바닷가 마을의 자연을 닮은 구릿빛 사나이와 해맑은 아낙네, 부산 전차역을 아버지의 ‘직장’으로 소개하던 천진난만한 지게꾼의 어린 딸, 지역 주민들에게 발전소 건설을 홍보하며 설레던 인제의 버스 차장…

그들은 저마다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서도 소박한 꿈과 진솔한 고민을 품고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다. ‘나그네’이자 ‘정체불명의 사나이’인 저자는 때론 간첩으로 오해받아 문전박대의 설움도 겪고 때로는 나라에서 시찰 나온 ‘높으신 분’으로 오해받아 대접받기도 했지만, 마을을 떠날 때쯤이면 아름다운 풍광과 살가운 인심에 물들어 발걸음을 떼기 힘들 때가 많았다.

7백여 일의 반도기행은 그렇게 아쉬움 속에서 끝났다. 그리고 반세기가 흘렀다. 가난한 대학원생이던 저자가 권위 있는 인류학자이자 대학총장이 되는 동안 우리의 땅과 그 속에 흐르는 삶도 변하였다. 오랜 세월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한 저자는 변화한 고국의 강산도 보고 젊은 날의 추억도 떠올리기 위해 ‘그 시절, 그 공간’을 다시 찾는다. 두 번째 여행에서 만난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저자의 발길을 따라 우리 땅 곳곳을 걸으며, 이 땅의 아름다움에, 민초들의 삶의 향기에, 그리고 모든 변하는 것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보자.

김중순 지음/나남/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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