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 다른 시간], 2015-06-17, "한국의 참모습은 이것" 반세기 타임머신 여행
매체명 : 머니투데이   게재일 : 2015-06-17   조회수 : 1080
2001년, 미국에서 30년간 대학교수로 지낸 한 인류학자가 귀국 비행기를 탔다. 시끌시끌한 산업화와 급격한 도시화의 와중에서도 자신을 권위 있는 학자로 키워낸 고국으로의 ‘공간이동’이었다. 그리고 10여년. 대학 총장(고려사이버대)이 된 그 노학자는 이제 공간을 넘고 시간을 달리는 ‘타임머신’을 탄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나남 펴냄)’의 김중순 총장 얘기다.

책은 1960년대 한국의 산하와 민초들의 생생한 얘기로 가득하다. 반세기 전 법학도였던 저자는, 마르코가 엄마를 찾아 달린 그 먼 거리(삼만리)를 법의식 조사를 위해 누빈 적이 있다.

책의 기초는 그 때 전국 방방곡곡을 돌려 마주친 시골마을의 돌담길과 안개 자욱한 기차역, 술 한 잔의 생각이 자연스러운 낭만의 항구 등에서 남긴 친필메모다. 저자는 다시 찾은 ‘그 시절, 그 공간’에서 느낀 감상과 추억을 ‘타임머신’을 탈 때 지참했던 메모와 대조해가며 한줄한줄 꾹꾹 눌러 담았다.

많은 이들에게 1960년대는 김승옥이 ‘서울, 1964년 겨울’에서 말하는 ‘욕망의 집결지’로 기억된다. 서울로 대변되는 당시 한국은 ‘시대’와 ‘사상’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칼춤을 추고, 도시화에 따른 정체성 상실과 가난, 우울 등의 삭막한 정서가 일부 권력층의 넘쳐나는 재산과 대비를 이루며 ‘격동의 회오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그건 한국의 참모습이 아니었다”고 잘라 말한다. 제주도에서 출발해 동서남북을 휘몰아치다 소양강에 이르는 7백여 일의 반도기행은 ‘평범한 사람들’의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웅변하듯 토해낸다.

목포에서 만난 넉넉한 인심의 ‘문학 처녀’와 ‘병풍 너머’ 인터뷰를 요구했던 괴산 양반마을의 꼿꼿한 할아버지는 이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구례로 가는 2시간 야간 산행을 앞둔 저자에게 산짐승 조심하라며 비닐우산을 건넨 촌로(村老)와 볼일을 볼 때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목표물을 받아내던 제주의 그 영리한 흑돼지는 ‘기억의 숲’에서 어떤 나무로 영생하는가.

때론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열대’처럼, 때론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처럼, ‘기록된 우리’와 ‘되돌아본 나’를 맛깔나게 버무린 저자의 글 솜씨가 책장을 술술 넘기게 만든다.

바닷가 마을에 딱 어울리는 구릿빛 사나이와 해막은 아낙네, 지게꾼 아버지의 직장을 전차역으로 소개하던 천진난만한 어린 딸…. 저자가 만난 ‘보통 사람들’의 자취와 그들이 터 잡았던 땅의 기록은 독자의 머릿속에도 ‘추억의 레일’을 깔고 ‘다른 공간, 같은 시간’의 타임머신에 올라타라고 종용한다.

◇ 같은 공간, 다른 시간/김중순 지음/나남 펴냄/402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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