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과 중국], 2015-06-13, “中 제압 위해… 스탈린 6·25전쟁 기획했다”
매체명 : 세계일보   게재일 : 2015-06-13   조회수 : 1078
6·25전쟁과 중국/이세기 지음/나남출판/1만8000원

‘6·25전쟁은 중국의 힘을 빼기 위해 스탈린이 기획하고 지휘한 전쟁이었다.’

한중친선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세기 전 국토통일원 장관은 최근 펴낸 ‘6·25전쟁과 중국’에서 전쟁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조지프 스탈린의 6·25전쟁 전략은 김일성을 미끼로 삼아 전쟁을 촉발해 미군을 불러들이고 중국을 끌어들여 한반도를 미·중 대결장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미·중 접근을 차단하는 ‘이이제이’ 전략을 완성하려는 속셈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성공하려면 북한군의 남한 점령이 성공해서는 안 되며 시간을 끌면서 미·중이 진흙탕싸움을 하도록 해야 한다. 결국 전쟁은 스탈린의 의도대로 아무런 결론 없는 전쟁으로 귀결되었고 한반도는 초토화했다. 이 전 장관은 일본 도쿄대학 박사학위 논문을 보완해 이 책을 냈다.

이 전 장관이 책에서 밝힌 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스탈린이 전쟁 의도를 직접 고백한 것이다. 1950년 8월 27일 필리포프(스탈린의 가명)가 프라하 주재 소련 대사를 통해 클레멘트 고트발트 체코 대통령에게 전한 비밀 전문 내용이다. 당시 동유럽 공산권에서는 왜 스탈린이 미군의 한반도 개입을 용인했느냐는 비판론이 비등했다. 이에 스탈린은 1950년 6월 27일 한국 파병을 결정하는 유엔안보리 회의에 소련 대표가 참석하지 못하도록 한 저의를 고트발트에게 설명해야 했다.

이세기 전 국토통일원 장관은 ‘6·25전쟁과 중국’에서 6·25는 소련의 스탈린이 중국 마오쩌둥을 견제하기 위해서 기획한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은 조지프 스탈린(왼쪽)과 마오쩌둥.
세계일보 자료사진
애초 스탈린의 전쟁계획서에는 서울 점령까지만 적시돼 있었다. 실제 소련은 김일성에게 약속한 한강 도하 장비를 제때 제공하지 않았다. 아울러 북한군 지휘부는 서울을 점령한 후 3일간이나 주춤했다. 김일성은 겉과 속, 말과 행동이 다른 스탈린의 지시에 불평했다.

김일성이 여세를 몰아 단시간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갔다면 조기 승리도 가능했다. 그렇게 됐다면 미군의 부산항 상륙이 불가능해져 스탈린은 자신의 의도대로 전쟁을 끌어갈 수 없다. 미군이 들어오고, 중공군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김일성이 너무 빨리 부산을 점령하거나 완전히 승리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전쟁 초기 소련은 북한군 지원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 공군력을 제공하지 않았고 방공무기나 최신 도하장비를 주지 않았다. 스탈린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을 반겼으며, 10월1일 유엔군이 38선을 넘자 마오쩌둥에게 파병하라고 요구했다.

6·25전쟁은 스탈린이 중국의 힘을 빼 마오쩌둥을 제압하기 위한 책략이었다. 김일성이 전쟁을 통해 달성하고자 한 ‘한반도 공산화 통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했고, 그는 스탈린 ‘장기판’의 졸에 불과했다. 스탈린에게 마오쩌둥은 공산혁명 초기부터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스탈린은 옛 유고의 요시프 티토가 떨어져 나간 이후 거대 중국을 가장 우려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영토 갈등이었다. 마오쩌둥은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이후 스탈린 생일 축하차 모스크바를 방문한 자리에서 스탈린에게 요구했다. 신장위구르 지역, 만주와 북한 땅을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이들 지역은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참전 대가로 소련에 떼어준 점령지였다.

스탈린은 마오쩌둥을 싫어했고 중국의 힘을 뺄 궁리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스탈린은 미국과 중국이 새롭게 동맹을 맺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미국은 중국과의 동맹을 위해 1950년 1월 한반도와 대만을 미국의 방어지역에서 제외한다는 ‘에치슨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스탈린은 이런 미·중동맹을 깨기 위해 한반도에서 미·중이 싸우도록 부추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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