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숨], 2015-05-26, [책 이야기] 숨을 멈춰야 사는 해녀들의 삶을 말하다 「물숨」
매체명 : 시사위크   게재일 : 2015-05-26   조회수 : 1057
숨을 멈춰야 사는 사람들이 있다. 드넓고 깊은 망망대해를 생계의 터전으로 삼는 해녀들이다.

해녀들은 별다른 장비 없이, 오로지 숨을 참는 폐와 헤엄을 치는 손과 발에 의존해 바다가 내어주는 싱싱한 해산물을 건져 올린다.

환상적인 자연과 어우러진 해녀들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실상은 가장 치열하고 척박한 삶의 현장이다. 해녀들이 참은 숨은 가정에 밥을 가져다줬고, 자녀들을 어엿하게 키우는 밑천이 됐다.

<물숨>은 그런 해녀들의 삶을 세심하게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글로 옮긴 책이다. 저자 고희영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 ‘뉴스추적’, KBS ‘수요기획’, ‘KBS 스페셜’ 등 유명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PD로 활동했으며, 제주도 출신이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 그 중에서도 가장 동쪽에 자리 잡은 우도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그동안 ‘해녀’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 소재에 주목하게 된 것은 우연찮은 계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저자는, 자신의 생각보다 해외에서 해녀의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또한 그 이유로 대부분의 해녀 다큐멘터리가 ‘국내용’이었던 점과 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표면적인 수준에 그쳤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다큐멘터리 작업은 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촬영을 허락하지 않고,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해녀들 때문에 섭외 단계부터 어려움이 따랐다. 그녀 역시 제주 출신이었지만, ‘저승의 문’에서 사투를 벌이는 해녀들은 카메라에 담기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러나 저자는 포기하지 않았고, 하나 둘씩 마음을 열어주는 해녀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전해지는 진짜 ‘해녀의 삶’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특히 경외감이 느껴지는 바다 속 해녀와 깊게 패인 주름만큼 파란만장했던 그들의 인생, 거친 터전에서 쌓인 삶의 지혜는 숙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또한 <물숨>은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한 만큼 다양한 사진으로 ‘해녀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거친 바다 속 해녀들의 모습과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일상 속 모습, 그리고 제주와 해녀의 풍습이 사진으로 고스란히 담겼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것들 중 하나인 해녀는 그 숫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1960년대 2만명 이상, 1970년대 1만 5,000명 이상이었던 제주숫자는 4,000여명 밖에 남지 않았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60대 이상이며, 30~40대는 100명도 되지 않는다. 이런 추세라면, 20~30년 후 해녀는 극소수에 불과한 ‘전설 속 이야기’가 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해녀들의 위대한 삶을 세심하게 기록한 <물숨>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단순히 그들이 물에 들어가 전복이나 해삼을 따오는 겉모습이 아닌, 정말로 목숨을 걸고 바다에 뛰어드는 해녀의 삶을 적나라하게 담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다음 세대에겐 생소한 존재일지도 모를 해녀, <물숨>은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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