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시간여행], 2015-05-22, [주말을 여는 책 | 미디어 시간여행] 음악 회화 건축 조각 … 모든 게 미디어다
매체명 : 내일신문   게재일 : 2015-05-22   조회수 : 1197
마셜 맥루한은 1964년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견해를 밝혀 현대 미디어이론에서 사용하는 미디어라는 단어와 가장 근접한 개념을 제시하였다.

심지어 1967년엔 미디어가 인간의 촉각을 자극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미디어는 마사지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발터 벤야민은 영화를 시각을 비롯한 지각의 확장으로 정의했다.

저자는 책에서 미디어의 역사 연구에서는 물론이고 일반적으로도 미디어의 종류를 논할 때, 많은 영역이 누락된다고 전제하고 각 영역을 하나하나 천착해 들어간다.

우선 음악, 회화, 연극, 건축, 조각, 영화 등은 각기 독립적 학문이나 예술 영역으로 분화되었기 때문에 언론학 영역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예술 영역 이전에 분명히 미디어로 출발했고, 여전히 미디어로서 기능한다.

미디어가 정보를 습득하고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매체임을 보면 음악, 회화, 연극, 건축, 조각, 영화 등은 미디어라는 것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책에서 1부 미디어 오디세이 2는 2년 전 저자가 내놓은 미디어 오디세이의 보완 격으로 언급한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고전 미디어의 역사를 정리하고 이에 관련된 현안과 저자의 시각을 정리했다.

예컨대 언어가 먼저일까 음악이 먼저일까?에선 독일에서 활동하는 성악가 서예리 씨의 사례를 들어 그가 고국에서 공연한 첫곡 세쿠엔차 III가 자신의 갓난아이가 내는 변화무쌍한 소리와 감정 변화에서 얻은 영감을 차용했다는 고백을 싣고 있다. 굳이 따지면 음악이 먼저이고 고대에 음악은 그것이 곧 언어였을 것이라는 추론을 제기한 것이다.

한편 스페인 라스코의 동굴벽화 역시 미디어라는 주장을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해석을 통해 연관짓는다.

곰브리치는 "우리는 이 신비스러운 원시 미술의 기원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우리가 미술의 역사를 재대로 이해하려면 그림과 문자는 매우 밀접한 혈연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우리나라의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비롯한 수다한 벽화와 20세기 멕시코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벽화 운동 역시 미디어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의 확장은 그에 그치지 않는다. 공자의 보디 토크(보디 랭귀지),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와 장자의 교훈 등 종교를 건드린다.

뿐인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정선의 금강전도, 김홍도의 서당 등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화와 풍속화, 고갱의 우리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와 피카소의 게르니카, 존 레논의 이메진, 문화대통령 서태지, 류성룡의 징비록 등 미술, 음악, 역사서 등을 통해 미디어 역사에서 누락된 미디어를 찾아 독자로 하여금 동서양을 여행토록 한다.

1부에서 빠트리면 아쉬운 부분 하나. 언론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대목. 이 말은 작년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문창극 씨가 2년 전 고려대 특강에서 한 내용으로 그의 역사관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우리 사회 기득 세력이 지닌 역사 인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밖에 미생물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현미경의 힘과, 우주 및 시간의 역사를 유추할 수 있는 망원경의 힘을 통해 특이한 발명품이 미디어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지목하기도 한다.

2부 미디어 연구의 새로운 시선에서 저자는 사회과학 발전의 맥락과 맹점을 보면서 그 안에서의 언론학 연구방법을 고찰한다. 뉴턴이 중력 법칙에 대한 착상을 철학적 사유에서 얻었듯이 마르크스도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착상을 철학적 사유에서 얻었다는 것.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등장했다고 해서 고전역학이 전면 부정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회과학에서는 정치경제학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거나 비판하면서 미시적 이론을 좇았음을 지적한다. 즉, 시간의 역사에 대해 지식을 주는 물리학과 철학세계를 여행하면서 지혜를 얻는 셈이다.

2부에서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은 동학과 물리학의 만남, 소통. 최제우가 서학(서도)의 모순을 꿰뚫어 보면서 창도한 동학(동도)은 종교인 동시에 학문이라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

학습에 차별을 두지 않은 공자의 사상이 무너진 조선에서 무너지고 서양이 천주교를 앞세워 침략을 정당화하고 혹세무민하면선 상업적 이익을 정당화한 그 시절, 마치 신자유주의 파고에 국민경제가 파탄 일보 직전이고 기독교의 부패와 혹세무민이 극에 달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동학의 창도는 당연한 귀결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학과 물리학과는 어떤 관련이 있나? 저자는 자연관에서 동학과 물리학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동학의 동경대전은 "대저 하늘의 도는 형체 없으나 흔적이 있는 것과 같고 지리는 광대하나 방위가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하늘에는 9성과 9주가에 상응함이 있으며 땅에는 8방과 8괘에 상응함이 있다"고 시작하고 있다.

물리학이 밝힌 자연의 법칙과 유사하지 않은가! 더욱 절묘한 것은 최제우나 아인슈타인 등 물리학자들이 공히 자신들 깨달음에 관한 소통에 고민을 거듭했다는 점이다.

3부 조선의 개화와 근대 신문"은 필자가 준비 중인 한국근현대언론사의 예고편이란다. 전작 미디어 오디세이의 역사 서술법과 마찬가지로 미디어를 역사로부터 격리된 발달 과정이 아닌 역사 속에서의 맥락을 살펴 유기적 상호작용에 대해 서술했다. 개화 당시 언론 상황을 고찰하면서 조선과 일본의 시선과 상황을 다각도로 교차시켜 보는 저자의 시선이 흥미롭다.

저자는 책에서 기존 언론사(言論史)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음악과 회화, 연극 그리고 사회과학 연구방법론의 논의를 미디어 개념으로 확장하면서 이를 시간여행이라는 테마로 엮었다.

전제적으로 볼 때 TV나 신문, 인터넷 등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미디어 외에도 도로, 의복, 가옥, 화폐, 시계, 자전거, 비행기, 자동차, 무기까지 모두 미디어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미술, 영화, 노래 속 미디어를 탐색했다. 또 사회과학적 미디어 연구를 넘어서 철학, 물리학에서 바라본 미디어의 모습을 살피기도 한다.

동서양, 현대와 고전을 넘나들며 익숙한 미디어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하지만 너무 방대한 콘텐츠를 작은 책에 담다 보니 총체적으로 정리가 잘 되지 않은 느낌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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