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숨] 2015-05-02, 해녀는 알았다, 욕망에 갇히면 바다는 무덤이 됨을…『물숨』
매체명 : 매일신문   게재일 : 2015-05-02   조회수 : 1056
물숨(해녀의 삶과 숨)/ 고희영 지음/ 나남 펴냄
“해녀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숨’의 한계를 알고 있다. 그래서 숨의 마지막에 이르기 전에 바다를 벗어 나온다. 그런데 만약 귀한 전복이라도 보는 날이면, 그만 자신의 숨의 한계를 잊어버리고 과호흡 상태가 되는데 그때 바다에서 먹게 되는 숨을 ‘물숨’이라고 부른다. 이제 사람의 숨이 아닌 물의 숨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물숨)(A little bit more)은 욕망을 덜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자 해녀를 통해 본 인간의 욕망에 대한 아픈 고찰이다. 저자 고희영은 “이 책은 제주도의 작은 섬 우도에서 한평생 바다와 함께 물질을 하며 살아가는 해녀들을 6년 동안 취재한 기록”이라면서 “그녀들의 은밀하고 외로운 바다 속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비로소 발견하게 된 나와 인간의 슬픈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녀는 오랜 취재를 통해 해녀들의 바다에 상`중`하군(軍)의 계급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계급에 따라 노는 물이 다르다는 흥미로운 사실과 그 계급을 결정짓는 것이 ‘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해녀들은 자기만의 숨이 있다. 그 숨의 길이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데 한 번 ‘상군’은 영원한 ‘상군’ 이고, 하군 해녀는 아무리 노력해도 한평생 상군의 바다를 탐할 수 없다.

숨은 곧 해녀의 욕망이기도 하다. 누구나 더 깊은 바다에서 더 좋은 물건을 건져올리고 싶다. 인생의 바다에서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싶어 하는 우리 뭍의 세상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래서 노장 해녀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후배 해녀들에게 마지막으로 전수하는 이야기는 물질의 노하우가 아닌 ‘바다에서는 절대 욕심 부리지 말라’는 당부의 말이다. 해녀들은 잘 안다. 욕망에 사로잡히는 순간, 바다는 무덤으로 변하고, 욕망을 다스리면 넉넉한 품이 된다는 것을.

저자가 해녀들의 은밀하고 깊은 바다 속까지 자맥질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긴 인내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저자 역시 제주도가 고향이었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면 우도의 해녀들은 때론 돌을 던지고, 카메라를 뺏어 내동댕이쳤다. 평생 들을 욕을 우도에서 다 얻어먹었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감독은 중국과 제주도를 오가며 ‘해녀 삼춘’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제주도 보리빵’을 한 보따리씩 사서 전조등도 없는 자전거를 타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그녀들을 찾아 나섰다. 6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감독 역시 어느새 ‘우도 해녀’가 됐다. 그리하여 해녀들의 물숨, 그녀들의 바다를 고스란히 책과 렌즈로 담아낼 수 있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제주 해녀. 2013년 현재 제주도에는 4천574명의 해녀가 있다. 그중 70세 이상이 2천152명으로 47%를 차지하고 있다. 40대 이하 해녀는 1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20년 후에는 절반 이상의 해녀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저자는 그저 해녀들의 삶,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로 돌아가는’ 그녀들의 일생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책과 함께 곧 개봉될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의 스태프는 화려하다. 재일교포 작곡가 양방언 씨가 음악을 맡았고 <모래시계>의 작가 송지나가 대본을 썼다. <물숨>에는 욕망을 다스리는 고통과 해녀의 이야기를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군더더기 없이 그려낸 송지나 작가의 시나리오도 첨부돼 있다. 또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다 보여주지 못하는 해녀들의 생생한 인터뷰도 친절하게 곁들였다.

<물숨>을 읽으면, 해녀들의 바다와 우리 인생의 바다가 오버랩 된다. 욕망을 덜어내지 못하는 슬픈 우리들의 자화상이 그곳에서 출렁거린다. 저자 고희영 감독은 “제주는 자신의 탯줄을 끊어준 곳이자 ‘정신의 열대‘”라고 말한다.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는 그녀는 <다큐멘터리 차이나>(나남 2014)를 출간했고, 방송인 이동우의 감동실화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시소 See-Saw>의 총감독으로, 또 중국 문화대혁명을 소재로 한 <1966~1976> 등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 중이다. 올가을 개봉하게 될 영화 <물숨>의 마중물로서 책이 먼저 독자들을 찾아 나섰다. 444쪽, 2만4천원.

석민 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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