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숨] 2015-04-30, 해녀, 그 날것의 삶을 그리다…‘해녀들의 삶과 숨-물숨’
매체명 : 스포츠동아   게재일 : 2015-04-30   조회수 : 1059
숨을 멈춰야만 사는 여인들이 있다. 맨몸으로 바닷속 10~20미터를 뛰어들어 생존과 맞서는 여인들이 있다. 하루 7~8시간씩 큰 숨 한 모금 들이마시고, 숨이 끊어질 즈음 ‘호오이’하며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여인들이 있다. 매일 숨 하나로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여인들. 그렇다. 해녀다.

해녀. 부르기엔 참 낭만적이다. 그러나 삶은 그리 녹록치 않다. 먹고 살기 위해, 자식들 가르치기 위해, 남편 술값을 위해 생과 사의 사선에서 줄타기를 한다. 조금 더 많이 해산물을 캐기 위해 욕심을 부렸다간 곧 죽음이다. 그렇다고 두려움을 안고 생에 매달렸다간 빈손이 되기 십상이다. 그것은 ‘삶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다. 도(道)다. 해녀는 숨 하나로 생과 사를 넘나드는 도인이다.

여기 해녀에 천착한 한 여인이 있다. 해녀들이 물질로 도(道)를 향해 간다면, 그녀는 ‘해녀’를 통해 도의 세계로 뚜벅뚜벅 걷고 있다. 고희영 씨. 제주가 고향이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 영화사 ‘숨비’의 대표다. 젊은 날 수평선이 갑갑해서 무작정 섬, 제주를 탈출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작가로, ‘KBS스페셜’ 등의 PD로 이름을 날렸다. 지금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긴 ‘물숨’을 쉬고 있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제주 동쪽의 섬 우도의 해녀에 빠졌다. 아니 홀렸다. 아니 그건 사명감이었는지 모른다. 그동안 해녀 관련 다큐는 ‘강인한 여성’ ‘한 많은 삶’류의 ‘신파성’이었다. 불쌍 가련 억척 그리고 우리들의 어머니 등으로 전개돼 눈물로 마침표를 찍는 ‘기승전-눈물’이었다. 그런 해녀를 다큐에 담으려 달려간 우도. 돌아온 것은 냉대였다. 좌절. 그녀의 카메라엔 해녀들이 들어가지 않았다. 해녀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보리빵 배달녀가 되고 때론 전조등도 없는 자전거로 어두운 길을 걷다가 구르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에 흘렀다.

진심은 돌도 움직인다고 했던가. 해녀들이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다. ‘입’을 주었고 ‘귀’도 그녀에게 아낌없이 허락했다. 마침내 그녀의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 속엔 ‘그림’이 아닌 ‘삶’이 자리 잡았다. 사람 향기도 났고 눈물도 배어나왔다. 그녀 또한 바닷속 해녀가 아닌 해녀 속에서 물질을 하는 ‘뭍의 해녀’가 됐다.

책 ‘해녀의 삶과 숨-물숨(고희영 지음 l 나남 펴냄)’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러니까 우도 해녀들의 6년간의 ‘숨’을 기록한 취재록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의 개봉에 앞서 애피타이저로 나온 맛보기인 셈이다. 영화와 활자는 차이가 있을게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머릿속으로 카메라가 돌아간다. 해녀들의 터전과 삶이 ‘날 것’ 그 자체로 보인다.

찡~했다. 읽는 내내 아픔이었고 고통이었다. 해녀가 곧 나였다. 슬픈 욕망을 가진 ‘해남’이었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욕심에 포로가 된 인간을 향한 외침이었다. 영화가 나오면 꼭 봐야겠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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