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2015-04-09, 선거연령 인하가 `세니오르 오블리주`다
매체명 : 매일경제   게재일 : 2015-04-09   조회수 : 1306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작가 김난도 교수님에게서 지난달 초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평교수로서 영광스럽게도 서울대 입학식 축사를 하게 되었다며 지난해 10월 19일자 본지 매경데스크에 소개된 신조어 `세니오르 오블리주(senior oblige)`를 인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자리의 성격상 특정 언론을 거명할 수 없어 "어느 언론인의 표현에 따르면"이라는 정도로 출처를 밝힐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공개 간행된 신문을 인용할 때조차 저작권자를 배려하는 그의 철저한 학자적 양심에 감명받았습니다.

기자는 당시 칼럼에서 세월호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책임을 강조하려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연장선상인 세니오르 오블리주를 제시했습니다.

김 교수님은 카카오톡과 페이스북 등 SNS상에도 널리 회자된 축사에서 세니오르 오블리주를 환기시키면서 기성세대의 양보를 촉구했습니다. 그 직후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께서도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세니오르 오블리주`의 이행을 강조했습니다.

이 용어가 널리 전파돼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를 배려하는 금도(襟度)와 책임의식을 되새기는 매개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우리 사회의 세대 문제를 투영한 우화(寓話)를 써왔습니다. 언론인의 책임의식에 기초한 개인적 창작입니다.

만약 전통적 유교사상의 종조인 퇴계 이황 선생이 세월호 사태를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퇴계는 타계 직전 필생의 역저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지어 막 즉위한 선조에게 헌정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선조와 지난해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은 같은 17세였습니다.

"선조는 그 나이에 임금이 돼 나라를 호령했건만 그 아이들은 장유유서의 권위주의적 질서에 눌려 희생된 것 아닌가. 이제 내가 앉아 있던 그들을 일으켜 세워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하리라." 그가 이런 결심을 하고 세월호 세대인 라이언(羅以彦)이라는 이름의 고교생을 택해 빙의되는 것으로 우화가 시작됩니다.

기자는 우화 속에서 세대 간에 전쟁이 벌어지는 극단적 상황을 설정해 봤습니다. 묘사 과정에서 `시니어 오블리주`와 `주니어 오블리주`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칼럼에서는 세니오르 오블리주로 표현했습니다. 세대 이기주의의 골이 깊어진다면 우화 같은 세대전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을 겁니다.

지금 기성세대가 이행해야 할 첫 번째 책무는 미래 세대를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 참여자로서 존중해주는 것입니다. 즉 선거권 행사 연령을 현행 19세 이상에서 18세 이하로 낮추어야 합니다.

국가인권위의 권고 때문만이 아닙니다. 공적연금 개혁과 청년실업 문제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유권자들이 지금보다 늘어난다면 이렇게 여야가 지지부진 면피로 일관할 수 있을까요.

시대 조류, 상식과 형평, 균형이라는 기준에서도 그래야 합니다.

선거연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우리나라와 일본만 19세 이상이었으나 이제 일본도 18세로 낮추기로 했습니다. 유럽은 16세로 낮추는 추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18세면 병역의무의 주체가 되고 공무원이 될 수 있으며 자유 의사로 혼인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투표는 하면 안 된다는 건 무슨 근거일까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돼가는 우리나라의 20대 유권자는 1980년대 35%에서 지금은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유권자층 내 세대 간 편중과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선거 연령은 낮춰야 합니다. 선거권 문제를 놓고 정치적 이해타산만 따지는 건 파렴치한 세대 이기주의입니다. 우화는 앉아 있던 세월호 세대들이 일어서서 전통 선비정신을 현대화한 새로운 한류 `K-스피릿`을 세계에 전파한다는 해피엔딩입니다.

입시와 취업에 짓눌린 미래 세대를 사회 의사결정에 참여시켜 능동적으로 미래를 열어나가게 해 주는 것이 세니오르 오블리주의 출발점입니다.

일찌감치 주인의식을 가지고 리더십을 키워가는 다른 나라 미래 세대와 그렇지 못한 우리 미래 세대가 머잖아 국제무대에서 주도권 경쟁을 펼칠 때 어느 쪽이 유리할까요. 국가 미래를 염려하는 차원에서도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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