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댓글놀이·패러디는 인터넷 공론장의 일부”
매체명 : 한겨레신문   게재일 : 2010-10-14   조회수 : 3911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와 이수엽(서강대 박사과정)씨는 저널리즘 계간지인 <언론과 사회> 가을호에 실은 ‘인터넷 공론장의 현실적 기술(記述)을 위한 이론적 제안’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런 온라인 공론장 논의의 흐름과 한계를 짚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인터넷 공론장의 현실과 이론 사이의 괴리는,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인터넷 공간에 공론장으로서의 성격을 부과하기 위해 어떠한 제한을 두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때문에 논문은 먼저 기존의 여러 공론장 이론들을 살피며 공론장이 어떻게 디자인되어왔는지를 살폈다.

롤스나 애커먼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합의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공적인 협력을 통해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사안’으로 공론장에서 논의될 내용을 사전에 제한한다. 공화주의적 견해인 해나 아렌트는 사적인 욕구와 필요와 대비되는 ‘공적인 것’을 규정해, 내용에 제한을 뒀다.

이에 견줘 위르겐 하버마스는 공론장 주제에 어떤 제약도 가해져선 안 된다고 했다. 그가 중요하게 내세운 것은 합리성에 근거를 둔 대화의 구조와 절차다. 상호 이해를 지향하는 행위자가 서로에게 수용되거나 반박될 수 있는 타당성 주장을 제기하고, 이런 타당성 주장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논의될 수 있는 이상적 토의 상황을 설정하는 것이다.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은 주제의 제한이 없다는 점에서 특히 인터넷 공론장 논의에 자주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대신 공론장의 형식에 제한을 뒀다고 논문은 지적했다. 대화 구조와 절차를 강조하기 때문에 오히려 논증에 익숙지 못한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이상적 기준에 갇혀 현실의 의사소통 자체를 외면할 위험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개념이다. 축구, 농구, 장기 등 다양한 게임들이 단일한 본질을 공유하지 않지만 ‘가족 유사성’이라 부를 수 있는 느슨한 고리로 묶일 수 있는 것처럼, 보편적 규범을 상정해 이를 따르기보단 어떠한 맥락을 구성하는 규칙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낱말의 뜻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전체 문장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에는 다음 아고라, 소울드레서 같은 인터넷 광장이나 커뮤니티들이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할 ‘인터넷 공론장’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논문은, 하버마스를 비롯한 기존 공론장 논의들이 의사소통 행위를 어떤 합의를 도출해내기 위한 행위로만 파악했다고 비판하며, 이를 ‘대화적 모델’이라고 규정했다. 대화적 모델로는 실제하는 공론장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으며, 특히 인터넷의 경우 한가지 대화방식으로 공론장 전체를 대표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존 듀이의 개념을 빌려온 ‘협력적 모델’을 제시했다. 공론장의 내용과 형식 어디에도 제약을 두지 않고, 서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며 스스로 의도하진 않지만 문제 해결에 접근해가는 행위 자체를 공론 활동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적 접근을 통해 그동안 대화로는 취급받지 못했던 패러디나 댓글놀이 등 수많은 유희적 요소들도 공론장에 등장할 수 있으며, 단일한 기준으로 파악할 수 없는 다양한 인터넷 공간들의 관계성도 살펴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논문은 무엇보다도 이론에 현실을 꿰어맞추려 인터넷에 대한 규범적 강조가 늘어가고 있는 경향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참된 공론장과 그렇지 않은 공론장을 따지고 구별해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공론 활동들을 이해하고 그 작동이 전개되는 조건을 설명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2010.10.14 한겨레신문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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