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악화된 현실에 '보수 유지? 전환?' 관심 커져
매체명 : 한국일보   게재일 : 2010-11-22   조회수 : 3742
진보, 보수를 구분하는 요소가 무엇인가를 해명하고 그 대화를 꾀하는 출판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구체적 정책에 대한 진보, 보수 학자들의 논쟁을 다룬 시사적인 책들부터 양자의 이념적 토대가 되는 서구의 정치사상을 원론적으로 해설한 두툼한 학술서까지 다종다양하다. 모두 올해 하반기에 집중 출간됐고, 판매량 등으로 볼 때 독자의 관심도 높은 편이다.

이는 진보와 보수 사이의 소모적 정쟁은 잦았지만 이성적이고 생산적인 논쟁이 부재했던 상황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결과라는 해석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정권교체 후 2년 반 이상이 지나 대중이 보수와 진보 정권의 차이를 분석할 시기에 도달했으며 미국발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가 기로에 놓였다는 내외적 요인이 결합된 것"이라고 분석하고 "지금의 보수적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것인지 전환될 것인지에 대한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조효제 베를린자유대 초빙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악화된 사회경제적 현실을 피부로 느낄 때 대중이 도대체 이념이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연스럽다"며 "상대방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들의 주장에 대해 지성적인 대응을 할 가치가 있다는 좌우 엘리트들의 각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보와 보수 논객의 논쟁모음집으로는 <진보와 미래를 논하다>(밈 발행)이 눈에 띈다. 사회민주화, 분배전략, 성장전략 등 8가지 주제를 놓고 진보, 보수 학자들이 벌인 논쟁을 지상중계했다. 가령 국가비전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전 정부와 현 정부의 정책참모인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재완 고용노동부장관이, 사회민주화와 관련해서는 진보개혁진영의 시민운동가인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과 보수 성향 시민운동가인 홍진표 계간 시대정신 편집인이 논쟁을 벌인다.


<보수와 진보의 대화와 상생>(나남 발행)은 중도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한반도선진화재단과 미래학회, 중도개혁 성향 학회인 좋은정책포럼이 2008~2009년 공동으로 진행한 3차례의 세미나를 묶은 것이다. 주대환 사회민주주의 공동대표부터 고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까지 12명의 학자들이 의견을 개진했는데 보수, 중도, 진보 진영의 학자들이 골고루 논자로 포진해있다. 보수 성향 학자들이 보수 진영을, 진보 성향 학자들이 진보 진영을 자체 비판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좌우파 사전>(위즈덤 하우스발행)은 시장과 국가, 노동시장 유연화 등 22가지 주제에 대한 좌와 우의 논리를 해설했다. 신자유주의나 법치주의와 같은 거대담론에서부터 영어공용화론과 영어몰입교육, 고교평준화와 학교다양화 등 구체적 현안까지 광범위한 의제를 다룬 점이 돋보인다.

번역서들도 눈길을 끈다. 미국 정치학자 폴 슈메이커 캔자스대 교수의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후마니타스 발행)은 근대 이후 서구의 주요 정치이념들이 인간, 사회구조, 정의, 변화 등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소개한 정치철학 개설서. 우파를 전통적 보수주의, 현대 보수주의, 급진적 우파, 극단적 우파로 나누고 좌파를 급진적 좌파, 극단적 좌파, 아나키즘,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등으로 세분화해 설명했다. 개념을 명확히 해 진보와 보수의 논쟁을 생산적으로 이끌겠다는 의도다.

미국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가 1996년에 쓴 <도덕, 정치를 말하다>(김영사 발행)는 진보, 보수 논쟁의 확산과 더불어 재번역됐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프레임 전쟁> 등으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던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 정치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핵심적 가치를 도덕관과 가족관의 차이로 꼽고 있다.

2010.11.22 한국일보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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