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전문가서 ‘시골 할머니 요리비법’ 전문가로
매체명 : 경향신문   게재일 : 2010-11-21   조회수 : 4080
ㆍ조용옥 전 국세청 국장 ‘밥상을 차리는 작은 지혜’ 펴내

서슬 퍼런 국세청에서 조사국장까지 지내고 육순을 훌쩍 넘긴 시아버지가 며느리들을 위해 앞치마를 둘렀다.

국세심판원 행정조정실장, 서초·삼성세무서장을 지낸 ‘조용옥공인회계사사무소’ 조용옥 대표(65). 조세 전문가인 그가 회계 관련 서적이 아닌 요리책을 내 화제가 되고 있다. <밥상을 차리는 작은 지혜>(나남 펴냄).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일러준 100가지 요리법’이란 부제도 달렸다.

그는 “갓 시집온 며느리들이 집에서 밥을 할 줄 아는지 유심히 관찰했더니 모르는 게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밖에서 사먹는 일이 종종 있었고요. 안타까운 마음에 요리 솜씨 좋은 식당 아주머니한테 부탁해서 한 달간 요리 ‘과외’를 시켰는데 효과가 없었다”면서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아 며느리들의 눈높이에 맞춰 요리하는 법을 하나둘씩 가르쳐주다 보니 요리책까지 내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도 양평이 고향인 조 대표는 주말마다 고향에 내려가 농사일을 하며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오는 시골 할머니들의 요리비법을 듣고 배워 직접 요리해본 뒤 꼼꼼히 노트해 두었다. 시작은 콩나물무침, 시금칫국 등 기본이 되는 두세 가지 메뉴였지만 그렇게 조리법(레시피)을 만들어 며느리에게 준 노트가 벌써 대여섯권이나 된다. 메뉴 노트를 지인들에게도 선물했더니 책으로 내라는 제안들이 잇달았다.

조 대표는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시중 요리책들을 탐독해보니 제 노트와 많이 달라서 용기를 냈다”면서 “그동안 직접 밥상을 차리면서 겪은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통해 터득한 소중한 비법을 주위에 꼭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불문하고 한 번의 검색으로 수많은 요리정보들이 홍수처럼 쏟아지지만 정작 당장 오늘 저녁식단에 활용하기에는 터무니없는 정보들이 많아 더욱 용기를 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의 책은 전통 한식도, 세련된 퓨전 한식도 아닌 그야말로 아침 저녁 우리 밥상 위에 오르는 국, 찌개, 김치, 반찬 등 소박한 음식들을 다뤘다. 하지만 그 방법은 보통의 책에서 말하는 내용하고는 좀 다르다. 김치 하나, 된장찌개 하나 만드는 데도 전해 내려오는 할머니 손맛과 지혜가 담겼다.

“예부터 된장국은 남편이 마실나갈 때 끓이고, 된장찌개는 남편이 마실에서 돌아올 때 끓이라는 말이 있어요. 된장국은 된장이 조금 들어가니 오래 끓이고, 된장찌개는 된장이 많이 들어가 오래 끓이면 텁텁하니 짧게 끓이라는 얘기죠. 그런데 이런 지혜를 알려주는 책이 없어요.”

조 대표는 또 “음식을 맛있게 만들려면 레시피도 중요하지만 식자재를 잘 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 어떤 재료들을 골라야 하는지를 책 곳곳에 ‘팁’으로 담았다. 그는 “제 솜씨를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며느리들은 이제 시금칫국도 잘 끓이고 외식도 안하며 손자들도 김치고갱이, 깻잎쌈도 잘 먹는다”고 자랑하면서 “세상이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혀를 차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차려드리는 밥상이 아니라,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차려주는 밥상이야기이니 말이죠”라며 웃었다.

2010.11.21 경향신문
글 김윤숙· yskim@kyunghyang.com
사진 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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