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꽃의 비밀을 아시나요
매체명 : 국제신문   게재일 : 0000-00-00   조회수 : 4776
부산서 활동 소설가 김현, 등단 10여년만에 첫 장편 봄날의 화원 펴내
1973년에 열세살된 소녀… 산업화시대를 살아오면서 내면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우리는 꿈의 힘으로 살잖아요? 꿈이 있으니 어려운 현실을 견디고. 그걸 이루려고 힘을 내서 살고. 그런데 그 꿈이란 게 사실 잘 이뤄지지 않는 거잖아요. 끝내 이뤄지지 않으니까 꿈이기도 한 거잖아요?" 말하자면, 꿈의 이중성이었다. 아직 이뤄지지 않은 그 꿈으로 인해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지만, 우리를 지탱시켜주는 그 꿈은 막상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어떤 것이라는 점.

부산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김현 씨가 첫 장편소설 봄날의 화원(나남 펴냄)을 냈다. 그는 1999년 한국소설로 등단했고 단편집 식탁이 있는 그림을 펴낸 바 있다. 등단한 지 10여 년만에 처음 장편소설을 출간한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1973년에 열세 살이 된 순영이의 이야기"라고 작가는 말했다.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 "내가 소설가인 한,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쓸 수밖에 없었을 소설"이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오랫동안 품고 있던 작품이란 뜻이다. "1973년에 열세 살이 되었던 순영이 속에는 저의 체험도 많이 녹아있습니다. 그 1년의 체험은 모든 게 처음이었고, 가장 강렬했고, 지금의 나를 형성한 요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도 해당될 것이다. 산업화가 시작되며서 농촌은 해체되고 도시는 새로 들어섰으며 정치적 독재의 해악에 눈뜬 백성들은 저항을 시도하던 시기였다. 그 소용돌이 속에 놓인 감수성 풍부하고 조숙했던 소녀 순영, 무쇠 같고 억척스런 엄마, 능력과 체력이 모두 어정쩡했던 아빠, 청순하고 선하지만 독한 사랑의 덫에 걸린 언니,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시대와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오빠가 주인공이다.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부산 북구 어딘가의 작은 농촌마을이다. 공무원이던 아빠가 갑자기 경제적 능력을 상실해버리자 엄마는 억척어멈으로 변신한다. 농사 짓고 동네사람들과 부대끼고, 운동권에 빠질 뻔한 오빠를 건져내 인근 절로 고시공부를 하러 가게 하고, 총명하고 공부를 잘했던 언니는 고등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안에 주저앉혀 희생하게 한다. 이 속에서 좌충우돌하던 순영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초경을 하고, 아픔을 겪으면서도 조금씩 성장해간다. 이 점에서 봄날의 화원은 성장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같은 얼개가 부산의 소설가 박향 씨가 최근 펴낸 생애 첫 장편 얼음꽃을 삼킨 아이와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다. 비슷한 연배의 두 작가가 각각 10년 이상 만지고 다듬었다는 생애 첫 장편소설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비슷해 보이는 얼개이지만, 박향 씨의 소설에서 주인공 소녀는 뭔가 올바르지 못하며, 자신을 억압해 들어오는 세상에 대해 자신의 방식으로 복수를 감행한다. 그러면서 어린 생을 밀고나가며 성장한다.

김현 소설의 순영이는 좀 더 자신 속으로 들어가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찾는다. 그리고 스스로 힘으로 꿈의 이중성을 깨달으면서 껍질을 깨고, 내면을 성장시킨다. 많은 이들은 무화과가 꽃은 피우지 않고 열매만 열리는 과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무화과의 꽃은 큰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어 보이지 않을 뿐, 주머니 속에서 서서히 활짝 피어난다. 무화과는 봄날의 화원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식물이다.

2010.08.11 국제신문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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