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소녀 자전적 성장기
매체명 : 부산일보   게재일 : 2010-08-12   조회수 : 3926
김현 소설가의 장편소설 봄날의 화원(나남)은 원래 무화과가 익는 동안이라는 이름이었다. "이 땅에 웹진이 막 출현하던 시기에 연재했던 소설이에요." 묵히고 묵혀 이제사 한 권의 소설, 그것도 생애 첫 장편으로 발표한 심정이 먹먹했던 모양이다. 담담한 회고 뒤로 남다른 감회의 표정이 흐른다.

소설은 중학교에 들어간 13살 소녀 순영이가 주인공이다. 무대는 1973년, 낙동강이 흐르는 부산 북구 구포. 거기서 1년 동안 보고 듣고 자라난 순영이의 성장기가 소설의 뼈대다. "그 일대는 거의 논밭이었어요. 부산의 끝자락, 변두리였죠."

부산 끝자락 1973년 구포 배경 : 도피·자살·희망 점철된 굴곡의 세상살이 다 보일 터

소설의 60% 정도가 자전적이라는 말. "한창 예민한 열서너 살 언저리는 정신적인 변화와 충격이 깊게 새겨지는 익음의 시기. 저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던 유년이었어요."

부산에 성장소설이 부쩍 늘고 있다. 올해 들어 조명숙, 박향 소설가에 이어 세 번째. 근래 쑥쑥 크고 있는 국내 청소년소설의 팽창과 맥이 닿는 걸까? 그는 굳이 성장소설로 한정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명칭이야 어쨌든 판단은 독자의 몫이라는 것. "작가들에겐 의식을 지배했던 때를 글로 쓰고 싶어하는 게 있지요."

말하자면 숙제, 부채감 같은 것. 시기가 문제지 언젠가는 썼을 내용들이란다. 그는 "뭔가 찜찜한 기분, 목에 걸린 느낌. 잘났건 못났건 이걸 내보내야 다음 것이 나올 것 같았다"고 했다. 앞서 두 소설가도 그러지 않았을까. 비슷한 연배이기도 한데, 올해 소설적 분만으로 나타난 것은 마침 그 연때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봤다.

"길가다가 엎어졌다고 쉬기는 해도 고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거 아이가." 순영이의 엄마는 힘겨운 시대를 억척스럽게 헤쳐 가는 전형적인 이 시대의 어머니 상이다.

아버지는 공무원을 그만둔 뒤 농사일을 하다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린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집안의 희망인 오빠. 이웃집 벙어리 아줌마의 딸인 옥주 언니와 사랑하는 사이지만 엄마가 받아들일 리 없다.

오빠는 출가해 스님이 됨으로써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고 옥주 언니도 저만의 방법으로 현실에서 도피한다. 그리고 꽃다운 시절을 집안 부엌에서 흘러 보내는 언니는 유부남을 사랑하다가 불륜이라는 멍에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다. 이밖에도 숱한 이웃들, 무수한 군상에서 땀과 눈물과 웃음이 버무려진 굴곡의 세상살이가 다 보인다.

"무화과는 꽃이 안 핀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안에서 피는 까닭에 보이지 않을 뿐, 곧바로 열매를 맺는답니다. 무화과가 익는 동안은 고통과 아픔 뒤의 정신적 숙성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무화과는 익고, 우리는 한 뼘씩 아프게 컸던 것이다.

2010.08.12 부산일보
김건수 기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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