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장소'로 펼쳐내는 민족의 역사
매체명 : 연합뉴스   게재일 : 2010-08-30   조회수 : 4060
기억의 장소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조선왕조실록과 조약문, 기밀해제 정부자료는 한국사(韓國史)를 쓸 때 꼭 필요한 자료다. 당시 역사적 인물들의 문집과 메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문헌자료들만 이용해 역사를 서술한 경우, 지금의 독자에게는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하지만 올드랭사인의 선율에 맞춘 애국가를 들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압제자였던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릴 수도 있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3.1 운동의 풍경이 그려질 수도 있다. 올드랭사인을 통해 역사를 파노라마 처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피에르 노라 프랑스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주임교수를 비롯한 일단의 역사학자들은 이런 올드랭사인(애국가)을 기억의 장소(lieux de memoir)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노라 교수와 뜻을 함께하는 역사학자들이 함께 쓴 같은 제목의 책은 이 기억의 장소를 토대로 프랑스의 역사를 더듬어본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프랑스 혁명의 상징이자 프랑스의 국기인 삼색기(tricolore)와 역시 혁명의 상징으로 국가(國歌)가 된 라 마르세예즈에서 공화국의 연원을 찾는다.

자유와 평등, 박애의 색으로 알려진 삼색기는 또한 옛 부르봉 왕가와 파리시를 나타내기도 하고 각각 성직자와 귀족과 부르주아(평민. 제3신분)를 상징하기도 한다.

반면 파리코뮌을 지지하는 이들은 삼색기를 부패한 것으로 여기고 적색기를 추앙하기도 한다.

이처럼 삼색기를 가지고 프랑스의 역사의 흐름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삼색기가 훌륭한 기억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노라 교수가 기억의 장소를 주제로 한 프랑스사 서술을 기획한 것은 20세기 들어 민족과 기억과 역사가 분리돼 각자의 길을 가게 된 데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민족에서 해방돼 하나의 사회과학이 됐고, 민족은 이미 주어진 어떤 것이 됐으며, 기억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됐다.

노라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민족적 혹은 국가적 기억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다 기억의 장소가 간직한 기억을 펼쳐내는 것이 역사가의 할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 동료들과 이 방대한 책을 써냈다고 한다.

한국어판은 총7권 136편의 논문으로 이뤄진 원서에서 41편의 논문을 골라 5권으로 출간됐다. 김인중 숭실대 교수를 비롯한 서양사학과 교수들이 옮겼다.

나남. 각권 424~568쪽. 각권 2만5천원.

2010.08.30 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com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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