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고>“살아있는 전설을 신화 속에 묻지 말자”
매체명 : 고대교우회보   게재일 : 2010-06-25   조회수 : 4393
개교 105주년 기념식이 있는 안암의 언덕은 화사한 봄의 꽃동산이다. 개나리와 산수유, 생강나무의 노란꽃이 봄의 서장이라면, 이제 새싹의 연두색과 아우르는 진달래나 영산홍, 철쭉이 핏빛을 토해내며 지금이 봄의 한가운데임을 웅변하고 있다.

마침 본관 석탑앞에 걸린 초대형 크림슨 색 교기가 파란 하늘에 호랑이의 포효를 보내고 있다. 장송이 군락을 이룬 솔숲아래에는 뛰노는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들은 유난히 길었던 지난 겨울을 헤치고 나온 꽃보다 더 싱그럽다. 오늘 하루는 모교방문의 해당학번만이 아니라 또 하나의 고대 백년을 준비해야 하는 교우들이 자녀와 손주들의 손을 잡고 어린 천사들의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을 함께하는 듯싶다.

금년 ‘자랑스러운 고대인 상’으로 50주년을 맞은 4.18 의거에 참여한 고려대 졸업생이 선정됐다. 처음에는 ‘4.18 혁명의 고대정신’이 바로 자랑스러운 고대인으로 선정되었다. 참 잘한 일이었다고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4.18은 의거이지 학생혁명은 아니라고 목청을 돋우는 완고한 사람들의 주장에 50년전 나라가 어려울 때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섰던 선배들의 천지를 뒤흔든 정의의 함성은 혁명보다는 아래개념인 그냥 의거에 묻히고 말았다. 그것이 ‘미완의 혁명’일지라도 ‘자유! 너 영원한 활화산’이며, 이 분화구가 바로 고대이며, 자랑스러운 고대의 4.18혁명이 곧 이 나라의 4.19 학생혁명에 다름아닌 역사인 것을 왜 모르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또한 처음에는 자랑스러운 고대인으로 ‘고대정신’을 의인화하여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그러나 상상력이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편견이 득세하여 고대의 집단의지이자 공동선으로 계속 추구해야할 ‘고대정신’ 대신에 ‘4.18 의거에 참여한 고려대 졸업생’ 집단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젊은 날 우리가 어깨동무하고 목이 터져라 외쳤던 오탁번 작시의 응원가, “나가자 폭풍같이 고대건아여, 장안을 뒤흔드는 젊은 호랑이,… 외쳐라 고대정신, 태양을 향해”라는 타는 목마름에 동참해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고대정신’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지 가슴가슴마다 물어야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어느 자리에 서 있든지 작은 실천이라도 치열하게 계속하여야 한다.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크기 때문이다. 가까운 과거의 살아 있는 전설을 신화 속에 묻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모교와 최일류 공과대학과의 통합 얘기도 들린다. 이 일이 성사되면 모교는 이 반도에 머물지 않고 세계대학의 반열에 설 만큼 환골탈태의 도약이 될 것이다. 훨훨 나는 모교의 웅비에 뿌듯함을 느끼며 마음 저 한 구석에서 불끈 용솟음치는 ‘고대정신’의 현장이라도 확인하고 싶어 4.18 기념탑을 다시 둘러본다. 지훈선생이 작시한 교가의 3절을 윤이상 선생의 곡에 맞춰 나지막하게 읊조려 본다. “그윽한 수풀은 우리 꿈의 요람이요, 저 넓은 벌판은 우리 힘의 소망이다. 드는 이 나가는 이 돌려서 지켜 힘차게 이어가는 이 정신 자유·정의·진리의 큰 길이 있다.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마음의 고향 … 영원히 빛난다.”

<법학70·본보편집위원>
이전글 '쇠고기협상을 말한다' 민동석 전 대표 책 출간
다음글 험난한 역사 위를 걸어온 파란만장 인생
prev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