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대선패배 일주일 후 쇠고기 다음정권 넘기자 결론”
매체명 : 동아일보   게재일 : 2010-07-03   조회수 : 4036
수입협상 실무담당 민동석 씨 책펴내

‘광우병 파동’을 불러온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가 정권 교체 이후 치러질 2008년 총선을 의식해 일부러 미국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2008년 4월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으로 쇠고기 수입 협상의 실무를 맡았던 민동석 외교안보연구원 외교역량평가단장은 최근 출간한 ‘대한민국에서 공직자로 산다는 것’(사진)이라는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한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민 단장은 협상 과정의 상세한 상황을 담은 이 책을 1일 열렸던 ‘PD수첩 광우병 보도사건’의 항소심 공판에서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국제신뢰 우려’ 안먹혀… 총선 의식한 듯

이 책에 따르면 2006년 11월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발견되자 일부 쇠고기 품목에 대해 수입 중단 조치가 내려져 미국 정부가 분노했고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의 국정 최우선 순위였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결렬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3월 말 부시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국제적 전문가들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한국의 쇠고기시장을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 같은 해 4월 한미 FTA는 타결됐지만 쇠고기 수입 협상은 여전히 난항을 겪었다. 미국산 쇠고기에서 척추뼈와 등뼈 등이 발견돼 수입이 금지되는 일이 반복되자 부시 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국제적 기준을 따라 달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냈다는 것. 그러나 같은 해 12월 17일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자 노무현 정부는 이듬해 4월 총선을 의식해 미국에 등을 돌렸다는 게 민 단장의 주장이다.

당선자 MB “해결해달라”… 盧는 거부

민 단장은 “노무현 정부는 대선 패배 일주일 후인 12월 24일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실무 부처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 문제를 다음 정권으로 넘기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회의에서 외교통상부 장관 등이 국제적 신뢰 문제를 거론하자 노 전 대통령은 “당신들은 피도 눈물도 없습니까? 나를 여기서 더 밟고 가려고 합니까”라고 말했다는 것. 또 “한미 FTA의 미 의회 비준을 위해서도 임기 안에 쇠고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건의에 대해서도 “잘 알겠습니다. 제가 부시 대통령에게 이미 약속을 했지요. 그런데 그렇게 쇠고기 문제를 해결해 주면 미 의회에서 한미 FTA를 비준해 주는 게 확실합니까”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기를 한 달여 남긴 2008년 1월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이 소집한 비상회의에서도 미국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론이 내려졌다고 이 책은 밝혔다. 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2월 18일 노 전 대통령을 만나 임기 안에 쇠고기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2010.07.03 동아일보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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