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 '경쟁적 동반자'의 길을 모색하다
매체명 : 조선일보   게재일 : 2010-07-03   조회수 : 3837
보수와 진보의 대화와 상생
한반도선진화재단·한국미래학회·좋은정책포럼 공편 | 344쪽 | 1만5000원 | 나남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국가 발전의 동반자인가 적(敵)인가? 적어도 이 책에 필자나 토론자·대담자로 참여한 지식인들은 경쟁적 동반자여야 한다는 명제를 수긍하는 쪽이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에는 상대방을 배척의 대상으로 보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서 이 책을 읽어나갈 필요가 있다.

책은 먼저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누구인지를 해명하는 데서 출발한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실제 투표 등을 통해 드러난 한국의 보수는 뜻밖에도 "수구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먹고 살기가 빠듯해서 좀 더 잘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진보도 "철없는 체제 전복 세력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조금은 더 여유가 있기에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사회 정의의 실현을 보고 싶어하는 선량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의 보수와 진보 대결은 그렇게 극렬하게 표출되는가? 강정인 서강대 교수(정치사상)는 한국 보수의 이념적 빈곤을 지적한다. "(실현되지도 않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반공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반공을 위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전도됐다가, 급기야는 반공이 곧 자유민주주의라는 억설로 둔갑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1987년 민주화 이후에 대해서는 다소 긍정적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보수주의가 반공주의와 발전주의만을 내세웠던 과거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진보의 이념을 점검한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오히려 민주화 이후 진보(민주화운동)세력이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고 비판한다. "정당은 국회의 권력게임에 매몰됐고, 노동조합은 때 이른 쇠퇴를 맞았다. 시민사회의 복원은 너무 짧은 시기에 쇠퇴에 직면해야 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이념 과잉은 진보세력의 발목을 붙잡은 족쇄가 됐다고 지적한다. "사실 진보의 위기는 노무현 정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1987년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보수와 진보는 갱신(更新)에 성공하였는가?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김일영 전 성균관대 교수(정치학)는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1년에 대한 성찰을 통해 보수세력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이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보여주듯 2010년 현재에도 유효하다. 첫째, 준비 안 된 보수의 집권이다. 둘째, 정치적 상상력과 포용력의 부족이다. 뉴라이트의 죽음을 선언한 김 교수는 이제 보수는 프로콘, 즉 프로그램을 가진 전문적 보수로 가야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한국 진보는 파산했다"며 뉴레프트 운동을 제안한다. 그가 제시한 뉴레프트 운동은 첫째 도덕적 우월감이 없는 좌파를 지향하고, 둘째 대한민국을 긍정하며, 셋째 민족주의는 우파에게 돌려주고 세계주의를 회복하고, 넷째 시장의 실패를 교정할 국가의 역할을 인정한다. 주 대표는 이어 "당분간은 보수와 진보 모두 새로운 정체성 정립을 위해 새로운 진보와 구진보, 새로운 보수와 구보수의 투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책 말미에는 보수를 대표하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진보를 대표하는 최장집 전 고려대 교수가 대담을 벌인다. 두 지식인은 우리의 이념 갈등이 실제에 비해 과장되어 있고, 그 주범은 정치권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또 북한 관련 문제도 생각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최 교수는 단호하게 "저는 북한은 한마디로 총체적으로 실패한 정권이라고 봅니다"고 말한다. 이어 친북(親北) 좌파에 대해서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이 점에서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의 어떤 긍정적 측면을 보고자 했던 남한 사회의 좌파들에게 북한문제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북한 지배체제의 리더십 붕괴와 북한 체제의 붕괴를 같은 차원에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다르게 본다. 최장집 교수는 박세일 이사장이 주장하는 적극적인 통일정책이 "오히려 통일을 어렵게 하고 북한에 더 경직적인 체제가 지속되도록 만들 수 있음"을 우려한다.

이 책은 첫 걸음이다. 이런 책이 분야별로 다양하게 쌓일 때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는 경쟁적 동반자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 전망을 갖게 된다. 다만 현실 속의 보수와 진보세력이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얼마나 수긍할지에 따라 그 희망은 절망으로 바뀔 수도 있다.

2010.07.03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 h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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