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갇힌 중년남자들의 일상
매체명 : 문화일보   게재일 : 2010-07-05   조회수 : 4205
40, 50대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은 쉽게 접하기 힘들다. 특히 그 연령대 남성을 소설의 주요 독자층으로 상정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기성세대인 그들은 이미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쉽사리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출간된, 작가 우영창(54)씨의 장편소설 ‘성자 셰익스피어’(문학의문학)와 하아무(44)씨의 단편소설집 ‘마우스 브리더’(나남)는 주목할 만하다. 40대 중반의 남성을 주인공으로 그들의 꿈과 애환을 치밀하게 그리거나(‘성자 셰익스피어’), 정서적으로 이 연령대의 남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들(‘마우스 브리더’)을 선보이고 있다.

우영창 장편소설 ‘성자 셰익스피어’ - ‘40대 가장의 애환’ 해학적으로 그려

우선 ‘성자 셰익스피어’는 돈 없고 힘 없는 40대 가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주변에 포진해 있는 또래 남성들의 애환과 일장춘몽을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 조한도는 서울 인근 소도시에서 ‘아시아바둑문화연구원’을 운영한다. 그의 주위를 맴도는 인물들 역시 하릴없이 동네 기원에 드나드는, 그저 그렇고 그런 이웃들이다. 하지만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들이 펼쳐보이는 삶의 굴곡들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특히 주인공 조한도의 캐릭터가 압권이다. 중학생 아들에게조차 무기력한 아빠로 각인돼 있는 그는 허구한 날 아내 부사옥의 구박에 시달린다. 7년 전에 퇴직하고, 동업한 사업마저 말아먹은 조한도에게 부사옥 여사는 아침마다 퍼붓는다. “…내, 아파트는 꿈도 안 꾼다. 전세 한번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달마다 나가는 월세, 그거 어쩔 건데. 3개월 밀린 거 어쩔 거냐고?”

45세인 조한도에게 43세인 부사옥이 ‘내가 너하고 나이가 같다’고 우기자 조한도는 ‘그래라’하고 대답해준다. 조한도가 어떤 성격의 인물인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들이 벌이는 ‘아침 한마당’을 좀더 들여다보자. 조한도가 집을 나가면서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변기에 앉아 있는 부사옥에게 ‘항의’하는 장면이다.

“아침마다 날 들들 볶아서 얻는 게 뭐야. 왜 날 붙들고 분풀이를 하냐고? 내가 그렇게 바보로 보여?”

“내가 없는 말 했어? 없는 말 했냐고?”

부사옥은 앉은 채로 대들었다.

“아, 참 뭐 같다. 똥이나 실컷 싸라.”

조한도는 현관문을 쾅 닫고 나왔다.

“나가 죽어!”

이런 조한도에게 꿈이 하나 생겼다. 바로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다. 조한도는 “성인의 마음만이 상처 받지 않고 부사옥의 광기를 감당할 수가 있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성인이 될 운명’인 그에게 시험이 하나 있었다. 바로 기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빵집의 아가씨였다. 그녀는 일정한 시간마다 빵집에서 나와 길 건너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 들고 유유히 빵집으로 돌아가는 신비의 여인이다. 조한도는 그녀에게 ‘몽’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혼자만의 사랑을 키워간다….

작가가 펼쳐보이는 이 소도시의 풍경은 소시민의 일상사를 여실히 드러낸다. 무엇보다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실감나게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가 대단하다. 배를 잡고 웃게 만들다가도 심각하게 소설 속 상황에 빠져들게 만드는 작가의 ‘입담’은 가히 독보적이다. 중년의 남성이라면 작가의 손길을 따라 자신과 별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볼 만하다.

하아무 소설집 ‘마우스 브리더’ -경쟁서 낙오된 ‘루저’의 모습 담아내

소설집 ‘마우스 브리더’는 보다 심각하다. 한국사회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루저’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작가가 묘사하는 한국사회는 궁핍하기 그지없다. 고시원에서, 국도변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건다. 하지만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도 이들이 살아남는 것은 만만찮다. 작품 속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은 ‘비루한 실존’ 그 자체다.

‘잘못된 삶을 올바르게 살 수는 없다’는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말처럼 작가는 모순된 상황에서 무너져내리는 삶의 잔상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양윤의씨는 “사회적 구조의 모순과 자본주의 사회의 증식 경쟁 속에서 낙오되는 인간 군상에 대한 소설은 2000년대 문학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라며 “그들은 이른바 ‘신(新)잉여인간’에 속하는데 안착할 집도 없이 방황하는 떠돌이 인생들”이라고 했다. 양씨는 이어 “수록작 ‘백제고시원’이 보여주는 그 고독한 이들의 ‘하루’는 우리의 일상 ‘전체’를 대표한다”고 밝혔다.

2010.07.05 문화일보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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