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진실 다 가려졌고 판결만 남아"
매체명 : 조선일보   게재일 : 2010-07-05   조회수 : 4183
민동석 前 한·미 쇠고기 협상 수석대표
2년간 은둔자처럼 지내다 광우병 사태 관련 책 펴내… 재판부에 증거자료로 제출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한국측 수석대표였던 민동석(58)씨.

그는 그해의 광풍(狂風) 같았던 촛불시위 사태에 휩쓸려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업통상정책관(1급)에서 물러나 외교부 외교역량평가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은둔자처럼 살아왔다. 방송과 인터넷으로 얼굴이 알려져 쫓기는 사람처럼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쓰고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세력으로부터 길거리 조심해라, 가족을 죽여버리겠다는 등의 협박과 악플에 시달렸다.

그런 공포 속에서 민 단장은 남모르는 작업을 해왔다. 촛불시위 당시 그와 가족을 괴롭혔던 광우병 괴담(怪談)을 기록으로 남겼고, 그 결과가 지난 1일 책으로 나왔다. 제목은 대한민국에서 공직자로 산다는 것이다. 그는 책 제목과 관련, "나의 경험을 거울 삼아 공직자들이 섣불리 낙담하지도, 상황에 휘둘리지도, 그렇다고 보신주의에 빠지지도 말고 굳건히 자리를 지켜달라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나를 공격해도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4일 기자와 만난 그는 "좌파들의 주장과 달리 한·미 쇠고기협상은 졸속 협상이 아니었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얼마나 과장과 허위로 대한민국을 만신창이로 몰아갔는가를 보여주려고 썼다"고 했다.

그는 지난 2년간 겪은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복받치는 감정에 말을 잇지 못하곤 했다. "촛불시위 이후 바위산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컴컴한 서재에서 남몰래 눈물 흘린 적도 많았어요."

그는 촛불시위 사태 이듬해인 작년 3월 MBC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자 주변에선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다 잊혀질 일인데, 왜 괜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하냐"며 만류했다.

민 단장은 모든 날짜와 사건을 외우다시피 생생하게 이야기했다.

"2007년 4월 2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 직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국제기준에 맞는 시장개방을 약속했었어요. 하지만 그해 말 대선에서 패배한 후에는 말을 바꾸고 말았죠."

그는 대선이 끝나고 며칠 뒤인 2007년 12월 24일, 관계장관 회의에서 송민순 외교부 장관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임기 안에 쇠고기 문제를 해결하자고 건의하자, 노 전 대통령은 "당신들은 피도 눈물도 없습니까? 나를 여기서 더 밟고 가려고 합니까?"라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약속 파기는 한·미 관계에 깊은 불신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다음 정권에 엄청난 부담을 떠넘겼습니다."

민 단장은 "PD수첩은 56분간 30군데 이상이나 왜곡·조작한 선동 방송"이라고 말했다. 특히 1984년 영국에서 단순히 뼈가 부러져 쓰러진 소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마치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인 것처럼 조작해 방영했다고 기술했다. 그는 이번에 쓴 책을 지난 1일 항소심 재판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민 단장은 "누가 거짓이고 진실인지는 이미 모두 알려졌고, 법원의 판결만 남았다"고 했다.

2010.07.05 조선일보
최형석 기자 cogi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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