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피도 눈물도 없습니까” … 노 전 대통령, 쇠고기 개방 번복
매체명 : 중앙일보   게재일 : 2010-07-06   조회수 : 3865
민동석 당시 한·미 협상 수석대표 비화 공개

대통령 선거가 여당의 패배로 끝난 지 5일 뒤인 2007년 12월 24일. 한·미 쇠고기 협상 관계장관회의가 소집됐다. 외교부 장관과 통상교섭본부장은 노무현 정부 임기 안에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을 매듭짓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신들은 피도 눈물도 없습니까? 나를 여기서 더 밟고 가려고 합니까?”

노 대통령의 말이었다. 미국에서 쇠고기를 수입하면 이듬해 4월 총선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었다. 앞서 그해 3월 노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로 했던 쇠고기 시장 개방 약속은 그렇게 뒤집혔다.

한·미 쇠고기협상 수석대표였던 민동석(사진) 외교부 외교역량평가단장이 쇠고기 협상에서 겪었던 일들을 공개했다. 이달 초 출간한 『대한민국에서 공직자로 산다는 것』이란 책에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농업 협상과 뒤이은 한·미 쇠고기 협상의 전개 과정을 담았다.

이에 따르면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 전까지 노 전 대통령에게 임기 안에 쇠고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2008년 1월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 회의에서 “미국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결론 지었다.

결국 쇠고기 협상은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 차 미국을 방문했던 2008년 4월 18일에야 타결됐다. 국내에선 미국 방문에 맞춰 서둘러 협상을 끝냈다는 ‘정상회담 선물론’이 불거졌다. 하지만 협상을 이끈 민 단장의 설명은 다르다.

“미국 측은 4월 14일까지 협상을 끝내야 한다고 했지만 내 머릿속에 정상회담은 없었다. 정상회담 전 합의하려고 했다면 결렬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협상 중단을 선언하지 못했을 것이다.”

민 단장은 협상을 시작한 지 6일 뒤인 2008년 4월 16일 협상을 중단한다고 미국 측에 통보했다. 쇠고기에 월령을 표시하고, 도축작업장을 한국이 승인토록 해달라는 요구가 반영되지 않으면 협상도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한국의 벼랑 끝 전술에, 절대 안 된다던 미국도 조금씩 타협했다. 작업장 승인과 연령표시 문제에서 미국의 양보를 일부 얻어냈다.

타결 뒤 촛불집회 열풍 속에서 민 단장에겐 ‘광우병 오적’ ‘매국노’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허수아비 화형식을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그는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1급)에서 외교부 외교역량평가단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이 책의 부제는 ‘협상대표는 동네북인가’다. 책 머리말에서 그는 “협상대표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위험한 협상에 몸 던지는 유능한 협상대표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광우병 파동이 공직자들을 위축시키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1일 열린 PD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 항소심에 이 책을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2010.07.06 중앙일보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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