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동아투위 기자의 ‘편집 씨줄과 날줄’
매체명 : 경향신문   게재일 : 2010-04-30   조회수 : 4584
1974년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 실천선언’으로 유신독재 정권에 맞서면서 이 신문에서 광고가 사라졌다. 그러자 독자들의 ‘격려광고’가 쏟아졌다. 역설적이게도 이 ‘광고탄압 사태’야말로 동아의 절정기였다. 하지만 이미 권력에 무릎 꿇은 경영진은 기자들을 무더기로 해고했다.

강제 해직된 ‘동아투위’ 기자들 가운데 ‘당대의 명편집자’로 꼽혔던 권도홍 편집부장이 있었다. 그는 20년의 기자생활을 줄곧 편집기자로 일관했다. 타협할 줄 모르는 깐깐함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 있던 그는 신문 편집자의 영역인 제목과 기사배치를 두고 권력기관과 자주 갈등을 일으켰다.

그가 1950~70년대 ‘신문사 풍경’과 ‘편집자 정신’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한 권의 책을 냈다. <날씨 좋은 날에 불던 바람>은 대학 1학년 중퇴의 학력으로 기자에 입문하는 과정, 신문 편집에 장인의식을 불어넣고자 했던 열정의 날들, 시대의 어둠에 굴하지 않고 소신을 지키려는 강단, 그리고 4·19, 5·16 등 현대사의 격변과 굴곡을 함께 지내온 쟁쟁한 동료 선후배 언론인들에 대한 회상을 담고 있다. 동서양의 웬만한 고전을 모조리 섭렵한 박람강기(博覽强記)의 내공이 책 곳곳에서 적절하고 감칠맛 나는 인용으로 되살아난다.

그의 남다른 고집과 편집정신은 69년 삼선개헌안에 대해 ‘변칙통과’ 대신 ‘변칙처리’라는 제목을 다는 등의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중앙정보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양심상 법리적 합법성을 의미하는 ‘통과’라는 단어를 쓸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는 시대의 의미를 촌철살인의 언어로 포착해내는 것을 좋은 신문 편집이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그는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한마디를 인용한다. “꼭 맞는 단어와 거의 정확한 단어의 차이는 번갯불과 반딧불의 차이다”라고. 어두운 시대와 맞서 싸운 한 언론인의 자전이 여전히 유효한 성찰과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은 지금의 우리 사회와 언론권력이 데자뷰처럼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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