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이야기/3월 26일] 출판사와 숲
매체명 : 한국일보   게재일 : 2010-03-25   조회수 : 5049
등단 무렵 나남이란 출판사에서 나온 누군가의 시집을 받아 읽었다. 그것이 나남과의 첫 만남이었다. 언젠가 하동 평사리 토지문학제에 심사 갔다 나남에서 집대성한 21권의, 박경리 선생의 <토지> 전집을 보고 마음에 쏙 들어 그 자리에서 전화 주문을 해서 샀다.

그 사이 나남에서 나온 책의 공동 필자가 되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나남이 후원하는 지훈상(문학부문)을 받았다. 지훈상은 지훈 선생님 사모님이 친필로 상장을 써주셨다는데 그해는 몸이 불편해 조상호 나남 대표가 붓글로 쓴 상장을 받았다. 제법 긴 세월 나남과 인연을 맺어온 셈인데 그동안 나남이란 뜻을 몰랐다.

조 대표가 쓴 <언론 의병장의 꿈>을 읽다 나남이란 나와 남이 책을 통해 하나가 되는 우리라는 뜻인 걸 알았다. 사진 찍는 친구 김석중이 아(我)와 타(他)가 하나라는 아타를 자신의 예명으로 삼았는데,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나남이 아닌가. 나남은 포천 신북에 16만 평의 숲을 꾸미고 있다고 한다.

책을 내거나 출판을 하는 사람은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책의 몸이 나무에서 왔으니 자기가 쓴 종이만큼 나무를 심어 갚아야 한다. 이것도 나남이 강조하는 자연채무(自然債務)와 같은 뜻일 것이다. 책이 쏟아지는 시대, 숲을 가진 출판사가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언제 그 숲에 가보고 싶다. 나무 몇 그루 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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