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신문지면의 숨은 꽃, 편집기자
매체명 : 중앙일보   게재일 : 2010-04-30   조회수 : 4499
‘말 공장’신문의 문화사 <상>

조우석 칼럼중앙일보 창간 1965년을 기점으로 국내 언론은 본격적 경영시대로 돌입한다는 게 예전 읽었던 관훈클럽 보고서의 분석이다. 그럼 그 이전은 경영 이전의 낭만시대쯤이 될까? 그럼에도 지면경쟁은 후끈했는데, 현재와는 양상이 달랐다.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이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에서 선선히 털어놓은 대로 1960년대 초 그 신문은 발행부수 6만5000부로 업계의 막내 처지였다. 레이스를 주도했던 건 새내기 한국일보. 사주 장기영이 54년 창간했던 그 신문이 젊은 이미지로 바람을 일으켰다.

당시 부산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권도홍(78) 전 동아일보 편집부장의 신간 『날씨 좋은 날에 불던 바람』(나남출판)에 당시 낭만시대의 지면 경쟁 열기가 선명하다. 중앙지로 옮기려고 신문 지면을 자체 분석해봤다. “행선지를 한국일보로 잡았다. 그때만도 조선·동아는 구투(舊套)인데다가 생기가 없었다. 한국일보, 특히 사회면의 기운생동하는 편집이 마음을 끌었다.”(55쪽) 신문사적 정보가 풍요로운 이 책은 자전적 기록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 동안 단발성 무용담에 그쳐온 신문 이야기를 당대의 문화사로 승격시켰다.

사실 세상 모두에 발언하는 신문이 막상 자기 역사를 홀대해온 건 지나친 겸손이었다. 신문이 ‘말 공장’ ‘담론의 생산기지’라면, 공장 내력과 기자 움직임은 문화사의 뼈대이자 속살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사람 얘기는 재미있다. 인간적 온기가 살아있던 그 시절, 그게 너무 뜨거워져 때론 치고 받기도 잘했다. 한 번은 술자리에서 저자가 헤비급 동료와 맞붙었다. 거짓말처럼 급소 단 한 방을 뻗어 단숨에 100㎏ 거구를 제압했다. 유유히 자리에 돌아와 한 잔을 들이킬 찰라 어느 새 돌아온 그가 저자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온통 붕대를 감은 채 다음날 출근했다. 편집국장 천관우 쪽을 바라보니 그도 ‘야간전투’ 흔적이 역력했다. 이마와 콧잔등에 빨간약을 바른 채 먼 산만 봤다. 넌지시 물어보니 “담벼락이 와서 들이받데?”하고 말았다. 그런 천관우는 “당대의 국토적 인물”이었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그래서 이 책은 수주 변영로의 『명정(酩酊)40년』급이다. 60년대 광화문 일대를 휘젓던 술고래인 중앙일보 편집부 구자익 기자 얘기, 지금은 없어진 ‘대머리집’ 얘기 등이 그렇다. 무엇보다 편집기자의 기록이다. 편집기자야말로 지면제작의 숨은 꽃인데, 그들 땀방울 이야기는 이 책이 거의 유일하다.

사실 일반인은 편집기자를 모른다. 편집국 메커니즘에 어두운 탓인데, 그럼 그들이 맡는 신문제목이란 무엇일까? 백 마디의 산문(기사)을 압도하는 한 줄짜리의 시(詩)이다. 그건 매일 아침 우리 삶을 좌우해온 정보의 결집이자, 제3의 문학행위다. 그들이 만지는 디자인 영역도 그렇다. 활자·사진·레이아웃 모두를 담은 시각디자인 종합상품이다. 왜 이걸 놓쳐왔지? 너무 흔해서 그랬을 것이다. 무궁무진 이야기를 스토리로, 역사로 만들지 못한 말 공장의 책임이기도 하다. 낼 모레로 여든 살 권도홍 왕기자는 노병이 뭔가를, 신문의 문화사가 뭔가를 보여줬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조우석 기자 [wow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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