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이론사이… ‘고뇌하는 진화론자’
매체명 : 세계일보   게재일 : 2009-11-20   조회수 : 5039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 맞아 번역서들 출간

올해는 찰스 다윈(1809∼1882)이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올 11월 22일은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일찍이 서구에서는 다윈이 남긴 일기, 연구노트, 초고, 편지, 개인장서 등 방대한 양의 자료를 해독하고 분석함으로써 ‘다윈 전설’을 해체하고 새로운 다윈상을 구축했다. 우리나라에도 그 연구성과들이 국내 연구자들과 번역서들에 의해 다양하게 소개됐다. 그러나 스티븐 제이 굴드가 ‘다윈 산업 혁명’이라 부른 그 새로운 전개의 성과들은 단편적으로 소개되었을 뿐이라서, 다윈이 진화론을 어떻게 전개시켰는지, 왜 오랫동안 발표를 미루고 감추어두었는지, 발표한 후 세상과 종교계와 과학계는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 속사정을 자세히 알기는 쉽지 않았다.

마침 다윈의 삶과 업적, 즉 생애와 사회적 맥락을 함께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에 시의적절하게 몇 권의 책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재닛 브라운의 두 권짜리 다윈 전기와 쌍벽을 이루는 방대한 ‘다윈 평전-고뇌하는 진화론자의 초상’(에이드리언 데스먼드·제임스 무어 지음, 김명주 옮김, 뿌리와이파리)과 ‘다윈은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을까?-1859년의 과학과 기술’(피터 매시니스 지음, 석기용 옮김, 부키), 그리고 ‘동물에서 유래된 인간-다윈주의의 도덕적 함의’(제임스 레이첼즈 지음, 김성한 옮김, 나남) 등이다.

‘다윈 평전’은 부제가 암시하듯 진화론을 다 연구해 놓고도 20년 동안이나 발표를 미루는 등 다윈이 ‘고뇌하는 진화론자’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는 것에 특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물학, 해부학, 지질학의 권위자인 데스먼드와 빅토리아 시대의 진화사상, 사회사상 연구가인 무어가 20년 동안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다윈의 인간적인 모습, 생계를 영위하는 혜안, 가정생활, 그의 과학에 대해 정밀하게 파헤쳤다.

책은 다윈이 월리스와 자연선택설을 공동 발표하게 되는 정황, 다윈의 불독 헉슬리와 윌버포스 주교가 벌인 ‘당신의 원숭이 조상이 할아버지 쪽이냐 할머니 쪽이냐’를 둘러싼 논쟁, 발생반복설로 잘 알려진 헤겔과의 만남 등 과학사의 명장면들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미소를 머금게 하는 다윈의 첫사랑 이야기, 다윈이 누구보다 사랑했던 큰딸 애니의 죽음에서는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을, 아내 에마와 저녁이면 두 번씩 주사위놀이의 일종인 백개먼 놀이를 즐기는 장면에서는 인간 다윈의 친근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다윈은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을까?’는 ‘종의 기원’이 발간된 1859년은 어떤 해였는가에 물음표를 던진 연구서다. 당시 영국의 언론 기록을 돋보기로 보듯 꼼꼼히 살펴보고, 과학과 기술 분야는 물론 문화와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여러 기록
여성의 맥을 짚고 있는 다윈을 풍자한 그림.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다윈은 “예쁜 소녀가 청년의 의도적인 시선을 느꼈을 때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몸에서 ‘겉으로 보이는 부위들’을 의식한 탓에 모세혈관에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썼다.
에서 단서를 모은 결과 저자는 1859년을 ‘거대한 변화의 해’였다고 단언한다. ‘종의 기원’ 덕분에 1859년이 의미를 얻은 게 아니라 1859년의 크고 많은 변화가 ‘종의 기원’을 낳았다는 것이다.

1859년에 이미 사람들은 ‘온갖 재료로 온갖 것을 만들기 위해’ 신소재를 찾아 나섰다. 또 세상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철도와 증기선, 그리고 전신 등 교통과 통신에서 속도를 좇기 시작한 것이다. 다윈과 생년월일이 같은 링컨에 의한 노예제 폐지를 비롯해 인권과 여권(女權) 등 개인의 자유를 외친 것도 이 시대며, 출세를 좇고 인생의 여유를 누리기 시작한 것도, 의학이 날로 번성하고, 과학이 전문화된 것도 1859년 즈음이었다. 지질학의 발견으로 6000년이던 지구 나이가 46억년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인문학자가 쓴 ‘동물에서 유래된 인간’은 다윈의 일대기와 도덕 및 종교의 진화론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이 존엄하다고 하는 근거를 꼼꼼히 살핀다. 다윈이 자연선택 이론을 발견하게 되기까지의 역사와 자연 선택 이론에 대한 설명만이 아니라, 이러한 이론이 윤리와 종교 등에 함의하는 바에 대한 논의 등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또한 철학적 논의의 배경으로 역사를 소개하기도 하고,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철학적 주장을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서술한다. 특히 진화론과 윤리학을 완전히 나누는 것은 성급한 태도라는 입장을 취하는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에 녹아 있는 ‘모든 존재는 각자가 갖는 특징에 따라 적절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도덕 관점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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