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통령 인촌 김성수 연구’ 펴낸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
매체명 : 동아일보   게재일 : 2009-10-08   조회수 : 5524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6일 “문화민족주의자인 인촌 김성수는 정부수립 과정에서 화합과 단결을 강조하며 숨은 조력자로서 공선사후를 실천한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仁村은 건국의 숨은 조력자, 정치가로서 公先私後 몸소 실천”

“언제 생명이 다할지 모른다는 절박함 속에서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그 매력에 이끌렸던 인촌의 생애를 직접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6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조용한 말투를 이어가던 노(老)교수는 2시간 가까운 인터뷰가 끝날 즈음, 자신은 13년째 폐암 투병 중이라고 조심스럽게 밝히면서 ‘대한민국 부통령 인촌 김성수 연구(나남)’를 쓰게 된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인촌 김성수(1891∼1955)는 개화와 자강이 민족의 살길이라 믿고 기업가 교육가 언론인 정치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지식인이다. 민족계몽과 독립의식 고취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가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창간한 신문이 동아일보다.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 정통한 원로 역사학자인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72)는 “인촌이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공로는 참으로 크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뒤에서 조력자로 남아 통일된 나라의 평범하고 떳떳한 일개 국민이 되는 것을 소망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인촌의 그런 모습이 역사학자로서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암 세포와 싸우면서 3년 동안 한국어는 물론이고 일본어와 중국어, 영어로 된 자료를 뒤져 가며 책을 완성한 이유였다.

이 교수는 인촌의 전 생애를 조망하면서도 부통령을 지낸 정치가로서 인촌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뒀다. 그는 “정치가로서 인촌이 훌륭했던 것은 공선사후(公先私後) 정신을 정치에서도 몸소 실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종로 갑구를 조선민주당의 이윤영에게 양보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교수는 “너도 나도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후보가 난립하던 시기에 인촌은 특별선거구가 없어져 이북 출신 동지들이 국회에 참여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을 크게 유감으로 생각해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고 과감히 지역구를 물려줬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후에도 국무총리 인선에서 우남 이승만에게 정치적 배신을 당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이범석 국무총리 후보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등 공익을 위해선 자신을 철저하게 낮췄다”고 설명했다.

1951년 국회에서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으로 당선된 인촌은 처음에는 고사하다 “국회에서 결정을 본 것인데 이를 거절한다면 이는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는 주변의 권유에 고집을 꺾고 부통령직을 수락했다. 이 교수는 “인촌은 부통령에 있으면서 자신에게는 ‘각하’라는 권위주의적인 호칭을 못 쓰게 했고, 공무원의 부정과 비리 방지를 위해 공무원의 처우 개선을 강력히 주장했다”고 소개했다.

정치인 김성수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한민당과 함께 처음에는 이승만을 지지했지만 그가 독재로 흐르자 동지들을 모아 반독재 호헌운동을 전개하며 민주화에 진력했다. 이 교수는 “그가 1년여 만에 부통령직을 내놓은 것도 이승만에게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당시 인촌의 사퇴서는 15m 길이로, 독재에 맞서는 비장한 심정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치가 김성수에 대해 “인촌은 근본과 정통성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순리대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저서에서는 인촌의 출생부터 사망까지를 △큰 포부를 품은 고창 청년 △민족운동 실천과 경제·언론창달 집념 △민족대학 인수운영 인재육성책 △한민족 광복과 정국 운영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정치력 발휘 등 5부로 나눠 조망하고 있다.

인촌이 정치 격변기에 암살 위협을 받은 것이 9번이나 된다는 사실과 젊은 시절 구미학습시찰을 떠나기에 앞서 인도의 간디에게 나라의 독립을 실현하는 방법을 물어 회신을 받은 일, 부통령에 선출되고 사망했을 당시 뉴욕타임스에 인촌의 기사가 실린 사실 등도 실려 있다.

이 교수는 일각에서 제기한 인촌의 친일 논란에 대해 “인촌은 독립군에 군자금을 주기 위해 금고문을 열어놓고 일부러 자리를 비우던 인물”이라며 “이 같은 논란은 한마디로 너무나 민망스러운 일이고 민족자강을 통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산 인물 전체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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