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 `10.26 비화' 회고록 발간>
매체명 : 연합뉴스   게재일 : 2009-08-03   조회수 : 4969
(서울=연합뉴스) 김범현 기자 =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다 1963년 6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 8선 의원을 지낸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3일 박정희 정권의 비화를 담은 회고록 `5.16과 10.26, 박정희, 김재규 그리고 나를 발간했다.

이 전 의장은 박정희 대통령, 김재규 부장과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

이 전 의장은 책 서문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나의 정치적 스승이었고 김재규 부장은 나의 중학교(대구 대륜중) 스승이었다"며 "김 부장은 박 대통령의 고향 후배였으며 육사 2기 동기생이었다"고 소개했다.

이 전 의장은 중앙정보부장의 대통령 시해라는 10.26 사건에 이른 박정희 정권의 비극을 차지철 경호실장의 `권력 2인자로서의 군림과 이에 따른 권력 내부의 갈등에서 찾았다.

특히 박정희 정권이 몰락의 길로 이끈 잇단 정치적 사건의 뒤에는 차지철 실장이 위치했다는 게 이 전 의장의 증언이다.

그는 "시해사건의 직접적 동기는 박 대통령, 김 부장, 차 실장 3자간의 미묘한 갈등관계"라며 "정권 말기 김 부장은 비교적 합리적이고 온건한 편이었으며, 차 실장은 강경 일변도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차 실장을 너무 편애하고 모든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김 부장보다 차 실장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며 "심지어 차 실장 앞에서 김 부장에게 면박을 주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5.16 쿠데타 당시 차 실장은 육군 대위, 김 부장은 장군이었던 만큼 김 부장이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며, 차 실장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에 박 대통령까지 시해하게 된 것 아니냐는 게 이 전 의장의 추측이다.

이 전 의장은 "김 부장은 1979년 10.26 사건 전에 나를 만났을 때 `차지철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다. 그가 모든 일을 제맘대로 하려고 하니 여간 큰일이 아니다고 푸념했었다"고 적었다.

그는 나아가 1979년 당시 신민당 김영삼(YS) 총재의 의원직 제명사건과 관련, "YS 제명을 주장하는 차지철과 이를 반대하는 김재규의 격론이 있었으나 청와대 눈치를 보는 당 간부들이 모두 입을 다물어 제명으로 결론이 났다"고 밝혔다.

그는 차지철 실장을 "막강한 권력을 쥐고 2인자처럼 행세했다"고 평가했다. 사설정보조직을 만들어 중요 사안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보를 했으며, 국회내에도 자신의 비밀조직을 가동했다는 것.

이 의원은 "차 실장의 국회 조직에는 행동하는 의원과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쓰는 의원을 합해 2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며 "차 실장은 공화당의 모든 간부회의를 좌지우지했고, 행정부 장관 뿐아니라 당 간부들도 그에게는 꼼짝 못하는 형편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정희 정권의 비극적 몰락의 원인에 대해 "무리한 3선 개헌과 72년 10월 유신 이후 장기집권에 따르는 권력 심층부의 타락과 부패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김대중 납치사건, 김영삼 제명사건, 10대 총선에서의 공화당 패배, 그리고 광범위한 민심이반 및 부마사태를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kbeom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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